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던 시점 직전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 통화했던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이는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VIP 격노설'의 실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섭 전 장관 측은 최근 특별검사팀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2023년 7월 3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것이 맞고, 채 상병 사건에 대해 군을 걱정하는 우려의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7월 31일 대통령실 회의에서 채 상병 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직후, 이종섭 전 장관에게 걸려온 '02-800-7070' 대통령실 번호의 발신자가 윤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현재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당시 회의에서 채 상병 수사 결과를 듣고 격노한 이후 사건 이첩이 보류되고 임성근 전 사단장이 혐의자에서 제외되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 즉 수사 외압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 중이다. 이번 이종섭 전 장관의 통화 인정은 이 '격노설'의 신빙성을 더욱 높이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앞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과 이충면 전 대통령실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등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윤 전 대통령이 채 상병 수사 결과를 듣고 화를 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이들의 진술에 더해 이종섭 전 장관의 통화 인정까지 나오면서, 윤 전 대통령이 수사 결과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으며, 이것이 이첩 보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종섭 전 장관은 그동안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않거나,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변해왔다. 그러나 특검의 강도 높은 수사와 관련자들의 진술이 이어지면서 더 이상 통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이종섭 전 장관의 통화 인정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고리인 윤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검은 이종섭 전 장관의 진술을 바탕으로 윤 전 대통령과 이 전 장관 간의 통화 내용 및 이후 이첩 보류 결정 과정에서의 상세한 경위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방침이다. 또한, 윤 전 대통령의 통화가 실제 외압으로 작용했는지 여부에 대한 법리적 판단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사법 정의 실현은 물론, 권력 기관의 투명성과 독립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중대한 의미를 가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