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을 품고 출근 시간대 만원 지하철에 불을 질러 수많은 시민을 공포에 떨게 한 60대 남성에게 검찰이 징역 20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넘어진 임신부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을 붙이는 등 명백한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서울남부지검은 16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양환승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원모(67)씨의 결심 공판에서 살인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원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와 함께 10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과 3년간의 보호관찰 명령도 함께 청구했다.
원씨는 지난 5월 31일 오전 8시 42분, 승객들로 가득 찬 채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 안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객실 바닥에 쏟아부은 뒤 라이터로 불을 붙여, 자신을 포함한 승객 160여 명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6명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를 받는다.
검찰이 공개한 당시 객차 내부 CCTV 영상에는 범행의 잔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원씨가 가방에서 휘발유통을 꺼내자 승객들은 혼비백산하며 옆 칸으로 도망쳤고, 이 과정에서 한 임신부가 휘발유를 밟고 미끄러져 바닥에 넘어졌다. 하지만 원씨는 넘어진 임신부를 보고도 망설임 없이 라이터를 켰고, 임신부는 불길이 치솟기 불과 2~3초 전 신발이 벗겨진 채 황급히 몸을 피했다. 검찰은 "넘어진 임신부를 보고도 불을 붙인 행위는 살인의 범의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객관적 증거"라고 지적했다.
조사 결과 원씨는 전 부인과의 이혼 소송에서 패소해 재산 분할에 불리한 판결을 받자, 이에 앙심을 품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끔찍한 범행을 계획했다. 검찰 통합심리분석에 따르면 원씨는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자기중심적 사고와 인지적 경직성이 강한 성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