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금융 시스템이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온라인 금융사기와 인신매매를 자행한 혐의를 받는 초국가적 범죄조직 "프린스그룹"의 총수 천즈 회장이 돌연 자취를 감추면서,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프린스은행에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즉 "뱅크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 프놈펜의 주요 지점에서는 불안에 휩싸인 예금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며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한 인물의 실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천즈 회장의 행방이 묘연해진 시점은 미국과 영국 정부가 프린스그룹을 초국가적 범죄조직으로 규정하고 고강도 제재를 발표한 직후다. 미 법무부는 천 회장을 온라인 투자사기, 강제노동, 자금세탁 등 혐의로 기소하고, 범죄 수익으로 거둔 약 1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1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트코인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 법무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자산 몰수 조치로, 국제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상당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 발표 이후 천 회장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며 일제히 실종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그가 캄보디아 국적을 박탈당하고 중국으로 송환됐을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추측이 무성한 상황이다.
1987년 중국에서 태어난 천즈는 2014년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한 뒤 불과 10년 만에 금융, 부동산, 카지노 등을 아우르는 거대 기업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로 포장되어 왔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공 신화의 이면에는 캄보디아 최고 권력층과의 검은 유착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수십 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해 온 훈센 전 총리와 그의 아들인 훈 마넷 현 총리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비호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법의 감시망을 피해 인신매매에 기반한 온라인 사기 범죄단지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거대한 "사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자선사업가로 위장한 채 뒤로는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해 온 그의 두 얼굴이 국제 수사 공조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천즈 회장의 실종 사태는 단순한 범죄조직 수괴의 도주를 넘어 캄보디아의 정치,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의 범죄 행각에 국가 최고 권력층이 깊숙이 연루되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캄보디아의 국가 이미지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예금주들이 "범죄조직에 내 돈을 맡길 수 없다"며 은행으로 달려가는 현 상황은, 부패한 권력과 결탁한 범죄 자본이 한 국가의 시스템을 얼마나 쉽게 마비시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제 사회의 압박 속에서 캄보디아 당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천즈의 신병이 어디에서 확보될지에 따라 캄보디아의 미래가 결정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