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현지 범죄 단지에 의해 감금된 채 잔혹한 고문을 받다 숨진 20대 대학생 박모(22) 씨의 유해가 사건 발생 74일 만에 마침내 고국 땅을 밟았다. 박 씨의 유해를 실은 대한항공 KE690편은 오늘(21일) 오전 8시 4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던 아들의 싸늘한 유해를 마주하게 된 유가족의 슬픔 속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남아시아에 만연한 온라인 스캠(사기) 범죄의 심각성과 우리 국민 보호 체계의 허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씨의 귀환은 한-캄보디아 양국 수사 당국의 공조로 이뤄진 공동 부검 직후 결정됐다. 한국 경찰청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문가들과 캄보디아 경찰은 어제(20일) 프놈펜의 한 사원에서 박 씨의 시신을 합동 부검했다. 앞서 제기되었던 장기 적출 등 시신 훼손 의혹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나, 시신 발견 당시 온몸에 선명했던 고문의 흔적은 그가 겪었을 참혹한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경찰은 국내에서 정밀 조직검사와 약독물 검사를 추가로 진행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방침이다.
대학생 박 씨의 비극은 지난 7월 17일 시작됐다. "해외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로 출국한 그는 곧바로 현지 범죄 조직에 납치돼 이른바 "웬치"로 불리는 범죄 단지에 감금됐다. 이후 한 달 가까이 이어진 감금과 고문 끝에 박 씨는 지난 8월 8일 캄보디아 남부 깜폿주의 한 도로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은 한국 청년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초국가적 범죄 네트워크의 실상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경찰 수사 결과, 박 씨는 국내 대포통장 모집책의 유인에 속아 캄보디아로 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최근 박 씨를 현지로 보낸 국내 모집책을 구속하고, 이들을 발판으로 삼아 현지 범죄 조직의 윗선을 추적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실 주재 TF를 구성하고, 지난 주말에는 현지에 구금돼 있던 범죄 가담자 64명을 국내로 송환하는 등 뒤늦게나마 총력 대응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늦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캄보디아 내 한국인 납치·감금 피해 신고는 지난해 221건으로 전년 대비 20배나 폭증했으며, 우리 정부의 수사 공조 요청에 캄보디아 측이 제대로 응하지 않는 등 외교적 한계도 드러났다. 젊은 대학생의 비극적인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무거운 과제는 명확하다. 해외에서 위험에 처한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보다 신속하고 실효적인 외교·치안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내외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범죄 조직을 뿌리 뽑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