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 20대 한국인 대학생 박모 씨 사망 사건의 주범이, 2년 전 대한민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의 핵심 조직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건이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동일한 초국가적 범죄 네트워크에 의해 자행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거대한 파장이 일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오늘(23일) 국회 정보위원회 현안 보고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현지 스캠 범죄에 연루된 한국인 규모가 최대 2천 명에 달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에 따르면, 국정원은 최근 캄보디아 현지 수사 당국과의 정보 공조 및 자체 분석을 통해 박 씨 살인 사건의 주범이 2023년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의 총책 이모 씨의 공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마약 음료 사건은 필로폰을 섞은 우유를 학생들에게 "두뇌 활동에 좋다"고 속여 마시게 한 뒤, 부모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한 신종 범죄로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다. 총책 이 씨는 이미 캄보디아에서 검거되어 수감 중이지만, 박 씨 살해에 직접 가담한 이 공범은 현재 도주 중인 상태다. 국정원은 "범인의 신병 확보를 위해 캄보디아 당국과 공조하며 추적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번 발표로 보이스피싱, 마약 유통, 납치 및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해외 거점 범죄 조직의 잔혹성과 그 거대한 연결망의 실체가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내 스캠 범죄의 심각성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캄보디아 경찰청이 지난 6월과 7월 두 달간 단속을 통해 검거한 스캠 범죄 피의자 3천 75명 중 한국인은 57명이었으나, 국정원은 실제 현지에서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한국인 규모가 최소 1천 명에서 최대 2천 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국정원은 특히 이들 중 상당수가 단순한 감금 피해자가 아닌, 범죄에 능동적으로 가담한 "피의자"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보위 소속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돈만 받고 빠져나오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현지에 가지만, 대포 통장을 만드는 순간부터 이미 범죄자가 되는 것"이라는 국정원의 분석을 전했다. 이들은 일단 조직에 발을 들이면 여권을 빼앗기고 감금된 상태에서, 협박에 못 이겨 또 다른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이나 사기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 당국은 강력한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국정원은 현지에서 구조되거나 추방된 한국인들이 다시 범죄 조직에 유입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여권 무효화, 출국 금지 등 강도 높은 행정 조치를 관계 부처와 협의해 마련할 방침이다. 또한, 캄보디아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범죄 조직이 라오스, 미얀마 등 인접 국가로 거점을 옮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관련국 정보기관과의 국제 공조를 한층 강화해 범죄 네트워크의 확산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