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재판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의 실체와 의도를 두고 윤 전 대통령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법정에서 격렬한 설전을 벌였다. 윤 전 대통령은 해당 발언이 간첩 등 반국가단체를 겨냥한 것이었음을 주장했으나, 홍 전 차장은 당시 체포조 명단에 포함된 인물들을 언급하며 윤 전 대통령의 주장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 심리로 20일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재판에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증인으로 재차 출석했다. 공판의 핵심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 윤 전 대통령과 홍 전 차장 사이의 통화 내용 중 등장했다는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의 대상과 맥락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직접 신문에 나서 "당시 내가 말한 것은 반국가단체인 간첩을 잡아들이라는 것이었다"며, 자신의 지시가 국가 안보와 공안 수호라는 정당한 직무 범위 내에 있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검찰총장까지 지낸 자신이 어떻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국군 방첩사령관이 이를 지시받는다는 것이 연결되느냐며 의혹 자체에 대한 개연성을 부인하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홍장원 전 1차장은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며 발언의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의 "반국가단체" 주장에 대해 "피고인께서는 싹 다 잡아들이라고 한 것이 반국가단체였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고 되물으며, 곧바로 당시 체포조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는 "그럼 (당시 체포조 명단에 포함된)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이 반국가단체는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전 차장의 이 발언은 윤 전 대통령의 지시가 단순한 공안 사범을 넘어 당시 정국의 주요 인물들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 지시의 본래 의도가 정치적 탄압에 가까웠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언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을 향해 "피고인, 지금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까?"라고 강하게 쏘아붙이며, 지시를 내린 최종 책임자로서의 자세를 문제 삼았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이 당시 지시의 모호성을 이용하거나 그 책임을 실무진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양측의 공방이 격화되자 재판부가 중재에 나서는 등 법정 내 긴장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 법정 공방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재판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실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 검찰총장 시절 윤 전 대통령의 지시가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내란 행위의 일환이었는지, 아니면 국가 안보를 위한 정당한 직무 수행이었는지 여부가 두 사람의 진술을 통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홍 전 차장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당시 공개했던 통화 기록 메모와 이번 법정 증언이 향후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연이은 설전으로 감정적인 충돌까지 빚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재판 과정에서도 양측의 치열한 증거와 논리 싸움이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