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월세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임차인들의 주거 부담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이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전용면적 101㎡ 아파트가 전세가 16억 원에 거래되며 해당 면적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강북과 강남을 가리지 않고 전세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전세난이 지난 2020년 발생했던 이른바 "패닉 전세" 사태 재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 섞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규제 강화에 따른 매물 잠김 현상과 신규 입주 물량의 급감이라는 악재가 겹치며 전세 시장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전세 가격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강화된 실거주 요건을 지목하고 있다.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원칙적으로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주택을 매수할 경우 최소 2년 이상 실거주 의무가 부여됨에 따라, 시장에 공급되던 신규 전세 매물이 급격히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고강도 대출 규제와 세제 압박으로 매수 심리가 위축된 실수요자들이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전세 시장에 머물면서 수요는 줄지 않고 오히려 누적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1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는 이러한 시장의 위기감을 수치로 증명한다. 지난달 서울의 주택종합 전세가격 상승률은 0.51%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상승 폭을 키웠다. 특히 아파트 전셋값은 한 달 사이 0.63%나 폭등하며 전체 상승세를 주도했다. 지역별로는 서초구가 1.24%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으며 송파구(1.2%), 강동구(0.83%), 양천구(0.82%) 등 교육 여건과 정주 여건이 우수한 강남권과 주요 학군지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실거래 현장에서는 연일 신고가가 기록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종로구 홍파동 소재 "경희궁자이(2단지)" 전용 101㎡는 지난달 16억 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이는 불과 한 달 전 같은 면적의 전세 계약 금액인 14억 원보다 2억 원이나 오른 수치다. 강남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자이" 전용 84㎡는 지난 9월 13억 6000만 원에 거래되던 것이 두 달 만에 4억 4000만 원 뛰어오른 18억 원에 계약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단기간에 수억 원이 급등하는 비정상적인 흐름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문제는 앞으로의 수급 전망이 더욱 어둡다는 점이다. 내년 1분기 서울의 신규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약 1400가구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올해 4분기 입주 물량인 1만 2000가구와 비교했을 때 약 90% 가까이 급감한 수치다. 통상 신축 아파트 입주는 전세 매물 공급의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 역할을 해왔으나, 내년 초 "입주 절벽"이 현실화될 경우 전세 매물 부족 현상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공급 부족이 만성화된 상황에서 임차인들이 갈 곳을 잃고 외곽으로 밀려나는 "전세 난민" 발생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의 시장 상황이 임대차 3법 시행과 입주 물량 부족이 맞물렸던 2020년 하반기 상황과 흡사하다고 진단한다. 당시 서울 전셋값은 1년 만에 10% 이상 폭등했으며, 매물이 없어 임차인들 사이에 대기 명단이 작성되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현재의 전세 시장 불안이 지속될 경우 전세가가 매매가를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추가적인 공급 대책이나 규제 완화 없이는 서울 전세 시장의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공통된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