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셀프 조사'를 통한 증거 인멸 혐의를 받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가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소환됐다.
30일 오후 1시 53분쯤 서울경찰청 청사에 도착한 로저스 대표는 취재진을 향해 "쿠팡은 계속 그래왔듯 한국 정부의 조사에 완벽하게 협조하겠다"며 "오늘 경찰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보 유출 규모 축소 의혹이나 국회 위증 혐의 등에 대한 질문에는 침묵한 채 조사실로 향했다.
서울경찰청 쿠팡 수사 종합 TF는 로저스 대표를 상대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 직후 이뤄진 자체 조사 경위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쿠팡 측이 수사기관과 협의 없이 중국에서 피의자를 접촉하고, 범행에 사용된 노트북을 회수해 직접 포렌식을 실시한 행위가 증거 인멸 및 수사 방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유출 규모를 둘러싼 양측의 견해차는 1만 배에 달한다. 쿠팡은 자체 조사를 통해 유출된 정보가 3000건에 불과하며 외부 전송은 없었다고 발표했으나, 경찰은 유출 규모가 3000만 건 이상인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쿠팡이 실제 피해 규모를 인지하고도 이를 은폐하기 위해 로그 기록을 삭제하거나 결과를 축소 발표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로저스 대표의 국회 위증 여부도 주요 수사 대상이다. 로저스 대표는 앞서 열린 청문회에서 자체 조사가 국가정보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국정원이 이를 공식 부인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합수본은 로저스 대표가 수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기관의 이름을 도용했는지 여부를 살피고 있다.
현장에서는 쿠팡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로저스 대표의 처벌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개인정보 유출뿐만 아니라 고(故) 장덕준 씨 과로사 사건과 관련한 산업재해 은폐 의혹에 대해서도 로저스 대표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이번 대면 조사를 통해 확보한 진술과 압수물 분석 결과를 종합해 로저스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지난 1일 출국 후 두 차례 소환 요구에 불응하다 입국한 만큼,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수사는 단순한 정보 유출 사건을 넘어 거대 IT 기업의 수사 대응 방식과 정당한 법 집행 사이의 충돌 양상을 띠고 있어 향후 사법 처리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