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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금과 은마저 흔들렸다… 신뢰를 잃은 금융시장의 초상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 입력 26-02-02 11:52



금과 은이 동시에 무너졌다. 안전자산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던 금이 급락하고, 산업과 투자의 경계에 서 있던 은은 그보다 더 가파르게 미끄러졌다. 가격의 하락 자체보다 더 불길한 것은 이 하락이 던지는 신호다. 금융시장은 지금 ‘위험을 피한다’는 고전적 공식마저 잃은 채, 혼돈의 문턱을 넘고 있다.

이번 금·은값 급락의 표면적 원인은 분명하다. 미 연준의 긴축 기조 장기화, 예상보다 더 끈질긴 인플레이션, 이에 따른 달러 강세가 귀금속 가격을 압박했다. 금리는 여전히 높고, 현금은 다시 ‘수익을 주는 자산’이 됐다. 이자도 배당도 없는 금이 상대적으로 매력을 잃는 구조다. 여기에 미국 국채 수익률의 고공행진은 투자자들의 시선을 귀금속에서 채권과 달러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시장 심리의 변화다. 과거 위기 국면에서 금은 공포의 피난처였다. 전쟁이 터지고 금융 시스템이 흔들릴 때, 자금은 본능처럼 금으로 몰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이 아니라 ‘현금화’를 선택한다.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고,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달러뿐이라는 심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는 위기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자, 시스템에 대한 불안의 반영이다.

은의 하락은 더 복합적이다. 은은 금처럼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면서도, 동시에 태양광·반도체·전기차 등 첨단 산업의 원재료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질수록 산업 수요 감소 전망이 가격에 선반영된다. 즉 은값 폭락은 금융 불안과 실물 경기 둔화라는 두 개의 공포가 겹쳐진 결과다. 은이 먼저, 그리고 더 크게 흔들린 이유다.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은 방향 감각을 잃었다. 주식시장은 반등과 급락을 반복하며 투자자들의 신경을 소모시키고, 채권시장은 금리 부담에 눌려 ‘안정’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여기에 금과 은까지 흔들리자, 시장은 더 이상 기댈 축을 찾지 못한 채 요동친다. 지금의 혼란은 단순한 자산 가격 조정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 질서 전환기의 진통에 가깝다.

역사는 늘 이런 순간을 반복해왔다. 통화 질서가 흔들릴 때, 금은 언제나 시험대에 올랐다.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금값이 폭등했듯, 신뢰가 무너질 때 금은 빛났고, 정책의 방향이 명확해질 때 금은 조용해졌다. 현재의 금값 하락은 ‘위기가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정책과 질서의 향방을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고백에 가깝다.
투자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기준이다. 단기 가격 변동에 반응하는 매매는 혼돈을 증폭시킬 뿐이다. 금은 하루 이틀의 방패가 아니라, 통화 신뢰에 대한 장기 보험이다. 은 역시 단기 투기 대상이 아니라, 실물 경제 회복의 바로미터다. 이 본질을 잊는 순간, 가격은 정보가 아니라 소음이 된다.
혼돈의 금융시장은 늘 극단을 낳는다. 공포는 과장되고, 기대는 앞서간다. 그러나 과장의 끝에는 반드시 균형이 찾아온다. 지금은 방향을 예단할 때가 아니라, 리스크를 관리할 때다. 금과 은의 폭락은 끝이 아니라 신호다. 이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혼돈은 위기가 될 수도,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는 힘은 예측이 아니라 절제된 판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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