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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름표를 떼면 혼란이 사라지는가… 복지부 ‘진료과목 표시 삭제’의 역설”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 입력 26-03-22 16:10



보건의료 체계의 근간은 ‘신뢰’다. 환자는 의사의 간판을 보고 병원을 선택하고, 그 선택은 곧 건강과 생명을 맡기는 결정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정부가 이 간판, 곧 ‘진료과목 표시’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명분은 분명하다. 

전문의가 아닌데도 특정 진료과목을 내세우는 사례로 인해 환자 혼동이 발생하고 있으니, 아예 표시 자체를 없애 혼선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단순한 해법이 과연 복잡한 의료 현실을 제대로 겨냥하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짚어야 할 것은 문제의 본질이다. 지금의 혼란은 ‘표시’가 아니라 ‘왜곡된 표시’에서 비롯됐다. 전문의 자격이 없음에도 특정 진료과목을 강조하거나, 소비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방식으로 광고하는 일부 사례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명확하다. 잘못된 표시를 바로잡고, 허위·과장 광고를 강력히 규제하면 된다. 그런데 정부는 문제의 뿌리를 도려내기보다, 

아예 간판을 떼어내겠다는 선택지를 꺼내 들었다. 이는 마치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며 신호등을 없애겠다는 발상과 다르지 않다.
환자 입장에서 보자. 

진료과목 표시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다. 의료 소비자에게 최소한의 ‘길잡이’다. 내과인지, 정형외과인지, 피부과인지조차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환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혼란스러워진다.

 특히 고령층이나 의료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계층일수록 이러한 혼란은 더욱 치명적이다. ‘혼동을 줄이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낳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의료계 역시 이 정책을 곱게 보지 않는다. 전문의 제도는 오랜 교육과 수련을 통해 형성된 의료 질 관리의 핵심 장치다. 진료과목 표시는 그 전문성을 사회에 알리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를 없애는 것은 전문성과 일반 진료의 경계를 흐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물론 정부의 고민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최근 의료 광고 시장은 사실상 ‘무한 경쟁’ 상태에 들어섰고, 일부에서는 전문성보다 마케팅이 앞서는 기형적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는 과장 광고는 규제의 사각지대를 교묘히 파고든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 당국이 보다 강력한 조치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정책은 ‘쉬운 길’이 아니라 ‘맞는 길’을 택해야 한다. 표시를 없애는 것은 관리의 포기일 뿐, 해결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보다 정교한 기준과 투명한 정보 제공이다. 예컨대 전문의 여부를 더욱 명확히 표기하도록 하고, 진료 범위와 실제 수행 가능한 의료 행위를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환자가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의료 시스템의 방향이다.

결국 이번 논의는 단순한 행정 규정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의 알 권리’와 ‘의료의 신뢰’를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간판을 없앤다고 혼란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혼란이 더 깊어질 수 있다.

복지부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혼란을 가리는 정책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혼란의 원인을 바로잡는 정책을 택할 것인가. 

의료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다. 
그 선택의 무게는 곧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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