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내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8년여간의 법적 사투 끝에 가해자의 처벌을 끌어냈던 김현진 씨가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이은의 변호사는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난 17일 김 씨가 숨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구체적인 사인은 유족의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은 17세였던 2015년 당시 시 강습을 매개로 알게 된 박진성 시인으로부터 상습적인 성희롱과 위력에 의한 부적절한 메시지를 받았다. 2016년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한 문단 내 성폭력 폭로 흐름 속에서 김 씨는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러나 가해자로 지목된 박 씨는 사실관계를 전면 부인하며 고인을 무고범으로 몰아세우는 등 2차 가해를 지속했다.
김 씨는 폭로 이후 가해자의 지지자들로부터 쏟아지는 악성 댓글과 사회적 낙인을 홀로 견뎌야 했다. 박 씨는 고인을 향해 무고는 중대 범죄라며 비난을 멈추지 않았고, 김 씨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박 씨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 과정에서 수년간 이어진 법정 공방은 고인에게 커다란 심리적 고통을 안겼다.
긴 싸움 끝에 법원은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박 씨의 발언이 허위 사실에 기반한 명예훼손임을 인정했다. 결국 박 씨는 사건 발생 8년 만인 2024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 8개월의 실형이 확정되며 법정 구속됐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가해자의 유죄를 끌어낸 것은 고인의 끈질긴 용기와 결단이 만든 결과였다.
이 변호사는 고인을 빛나고 뜨거웠던 청춘으로 기억하며, 그가 낸 용기가 수많은 여성에게 연대의 힘을 실어주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의 투쟁은 문단 내 고질적인 위력 관계를 폭로하고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기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빈소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조용히 마련됐으며 장례 절차는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고인이 남긴 8년의 기록은 문단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로 남게 됐다. 이 변호사는 사필귀정을 일궈낸 고인의 명복을 빌며 우리 사회가 그의 용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별세 소식에 여성계와 문단 일각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유죄 판결을 지켜본 뒤에도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떠난 사실에 대해,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체계와 2차 가해 방지책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