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가 부대 해체를 앞두고 소속 요원들에게 예산을 조기 소진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대북·방첩 업무에 쓰여야 할 세금이 유흥주점 출입이나 골프 비용 등 사적 용도로 전용되고 있다는 현직 간부의 폭로가 나오며 조직 기강 해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현직 방첩사 간부 A씨는 28일 사령부가 지난달 하달한 지시사항 문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는 부대 개편이 이뤄지기 전인 3분기 예산까지 남김없이 집행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방첩사 요원들이 받는 매달 활동비는 기존 150만 원 수준에서 올해 들어 약 250만 원까지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활동비 집행 내역은 더욱 심각한 실태를 보여준다. 제보자 A씨는 늘어난 예산이 본래 목적이 아닌 야전 부대원 접대와 개인 복지비 성격으로 쓰이고 있다고 증언했다. A씨는 "주 5일 내내 술을 먹으러 다니며 골프를 치거나 선물을 사는 데 돈을 쓰고 있다"며 "사실상 본인들 복지비로 쓰인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특히 증빙이 불필요한 예산 항목을 이용해 유흥주점에 출입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령부는 예산 소진 지시와 함께 내부 입막음을 위한 '함구령'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에는 "사령관이 부대 개편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전략적 침묵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포함됐다. 이는 방첩사 개혁이 논의되는 시점에서 조직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구성원들의 외부 발언을 통제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첩사 측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방첩사령부는 "사령관이 예산이나 휴가 소진을 지시한 적이 없다"며 "다만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투명한 집행과 휴가 사용을 권장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방첩사는 국정원과 함께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해체 수순을 밟는 조직이 '예산 털어내기'식 집행을 강행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방첩 활동비가 부당하게 사용됐다는 구체적 정황이 제시된 만큼, 향후 감사원 감사나 관계 당국의 정밀 조사가 불가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