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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조무사 주사기 쥔 채 사망…집 싱크대에서 약물 수두룩

김태수 기자 | 입력 26-04-30 10:02



주방 싱크대 문을 열자 수면마취제 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이 공개한 수사 현장에는 프로포폴과 미다졸람 외에도 소염진통제, 항생제, 주사기 등이 집안 곳곳에 방치되어 있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간호조무사 A씨의 집에서 확보된 수면마취제는 모두 162개에 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가 마약류를 상습적으로 투약하다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조사 결과 내과 의원에서 근무하던 A씨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의 허점을 노렸다. 실제 환자에게 투약한 양보다 많은 양을 시스템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남는 분량을 확보했다. 가령 환자 3명에게 각각 한 앰플씩 처방한 것으로 보고한 뒤, 실제로는 두 앰플의 양을 나누어 투약하고 남은 새 앰플 하나를 통째로 챙기는 수법을 썼다.

A씨는 의료진이 모두 퇴근한 뒤 가장 늦게 자리를 뜨면서 빼돌린 약물을 외부로 반출했다. 관리 책임자인 해당 내과 원장은 A씨가 사망한 뒤에야 도난 사실을 인지했다. 하지만 원장은 사고 발생 이후에도 다른 환자에게 투약한 것처럼 장부를 허위 기재해 빈 수량을 숨기려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계 종사자가 마약류를 불법 유출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서울 반포대교 포르쉐 추락 사고 당시에도 성형외과 출신 간호조무사가 프로포폴 100여 병을 빼돌려 운전자에게 공급하고 직접 투약까지 한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의료 현장에서 마약류 반출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현행 관리 체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은 의료기관이 사용량을 스스로 입력하는 셀프 보고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의료진이 작정하고 데이터를 허위로 입력할 경우 실시간으로 이를 걸러낼 차단막이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입고된 마약류의 총량과 실제 폐기되는 공병의 수량을 교차 확인하는 외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한 유사 범죄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입고량과 사용량 차이가 큰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집중 점검에 착수했다. 특히 마약류 관리대장 허위 작성과 불법 반출 행위에 대해서는 수사기관과 공조해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의료 현장의 자율 보고에만 기대온 방역망이 뚫린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상호 견제 시스템 구축 여부가 향후 마약류 오남용 방지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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