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인공지능 반도체 랠리에 힘입어 세계 시가총액 순위 5위권에 올라섰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업체 매크로마이크로 집계에 따르면 5월 기준 한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약 4조5400억달러 수준으로 집계됐다. 미국, 중국, 일본, 인도에 이어 캐나다와 대만을 앞서는 규모다. 국내 증시는 올해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급등세를 보이며 세계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강한 상승 흐름을 나타냈다.
이번 순위 변화의 중심에는 메모리 반도체가 있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와 고성능 D램 수요가 급증했고,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 기대가 주가에 반영됐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가 지난 27일 시가총액 1조달러를 처음 넘어섰고,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 증시 상승을 이끌었다고 보도했다. 같은 보도에서 코스피는 올해 들어 90% 이상 상승한 세계 주요 지수 가운데 최상위권 흐름으로 소개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은 한국 증시 규모를 단기간에 끌어올린 직접 요인이다. 5월 27일 기준 SK하이닉스는 224만3000원에 마감하며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어섰고, 삼성전자도 30만원대 안팎에서 거래됐다. 29일에는 삼성전자가 29만9500원으로 30만원선을 밑돌았지만, SK하이닉스는 228만9000원으로 상승 마감했다. 단기 급등에 따른 변동성은 커졌지만, 두 종목이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확대됐다.
한국 증시의 부상은 대만과 인도 증시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인도 증시는 성장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AI 관련 대형주의 부재와 외국인 자금 이탈로 상대적으로 부진했고,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강세를 보였다. 로이터는 대만 증시 시가총액이 4조8900억달러 수준까지 올라 인도와 격차를 좁혔다고 전했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두 대형 반도체 기업이 동시에 급등하면서 대만과 캐나다를 넘어서는 흐름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한국 증시가 급등했음에도 밸류에이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문 자료에서 제시된 MSCI 기준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은 한국이 8배 안팎으로, 미국과 일본, 유럽, 대만보다 낮은 수준이다. 주가순자산비율 역시 대만보다 낮게 평가된다. 반도체 이익 전망이 크게 개선된 반면 주가 평가 배수는 아직 낮다는 점이 추가 상승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저평가 논리만으로 상승세가 계속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국 증시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HBM과 D램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장기공급계약이 늘어나면 실적 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공급 확대가 빨라지거나 AI 투자 속도가 둔화하면 주가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하루 단위로 크게 출렁인 것도 단기 과열에 대한 시장의 경계가 함께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증시가 대만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로는 주주환원 수준도 거론된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높은 배당과 안정적인 주주환원 정책이 시장 프리미엄을 뒷받침해 왔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실적 규모에 비해 배당성향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부와 기업이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이 실제 배당 확대와 자본 효율 개선으로 이어지는지가 앞으로의 평가 배수 회복을 가를 변수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확대 방침도 시장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 로이터는 국민연금이 코스피 랠리에 맞춰 2026년 말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높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대형 기관투자가의 국내 주식 비중 확대는 수급 측면에서 시장 하방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증시가 세계 5위권에 진입한 것은 단순한 지수 상승 이상의 변화를 담고 있다. 과거 한국 증시는 낮은 배당, 지배구조 할인, 메모리 경기순환성으로 인해 할인받는 시장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AI 반도체 수요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을 바꾸고, 조선·방산·전력기기 등 제조업 전반의 이익 개선 기대가 더해지면서 시장의 평가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관건은 급등한 시가총액을 실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다. 메모리 가격 상승, HBM 공급 경쟁력, 고객사 장기계약, 주주환원 확대가 이어지면 한국 증시는 현재의 순위를 유지하거나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반도체 쏠림이 심해지고 일부 대형주 주가만 시장을 끌어올리는 흐름이 굳어지면 변동성 부담도 커진다. 세계 5위권 진입 이후 한국 증시가 풀어야 할 문제는 상승 속도가 아니라 이익과 주주환원, 산업 저변이 함께 따라오는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