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반도체 후공정 소재 업체들의 가격·물량 담합 의혹과 관련해 강제수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29일 엠케이전자, 엘티메탈, 덕산하이메탈 등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 3곳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압수수색은 전날부터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업체는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의 납품 가격과 공급 물량을 사전에 조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납품 단가를 올리거나 공급 물량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업체 간 협의가 있었는지, 이른바 "짬짜미"를 통해 시장 질서를 교란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현재 단계에서 구체적인 대상 품목과 담합 방식은 확정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압수수색 대상 기업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제조사에 소재를 공급해 온 업체로 알려졌다. 엠케이전자는 본딩와이어와 솔더볼, 솔더페이스트 등을 생산하고, 덕산하이메탈도 솔더볼과 솔더페이스트를 공급한다. 엘티메탈은 본딩와이어, 솔더볼, 솔더페이스트 등을 생산하는 범 LG 계열 소재 기업이다. 반도체 후공정에서 칩과 기판을 연결하거나 접합하는 소재를 다뤄온 업체들이 동시에 수사 대상에 오른 것이다.
반도체 후공정 소재는 완성 칩의 품질과 수율에 영향을 주는 핵심 부품으로 분류된다. 솔더볼은 반도체 칩과 기판 사이의 전기적 연결을 돕는 미세 접합 소재이고, 솔더페이스트는 전자부품을 기판에 붙이는 데 쓰인다. 본딩와이어는 칩과 외부 회로를 연결하는 금속선이다. 이들 소재의 가격이나 공급 물량이 인위적으로 조정될 경우 반도체 제조사의 원가 구조와 공급망 안정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검찰은 각 사 본사와 관련 부서에서 납품 계약 자료, 가격 협의 내역, 거래처 자료, 내부 문건 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엠케이전자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덕산하이메탈은 울산 북구, 엘티메탈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오전부터 시작된 압수수색이 오후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은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엠케이전자는 압수수색에 투명하고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현재 어떤 품목과 계약이 수사 대상인지 전달받은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덕산하이메탈도 수사기관 조사가 진행 중인 단계로 구체적인 혐의 사실이 확정된 바 없다며 절차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엘티메탈은 별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수사는 반도체 공급망 내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검찰의 강한 대응 기조와 맞물려 있다. 검찰은 최근 가격 담합과 플랫폼 갑질 등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사건에 대해 수사를 확대해 왔다. 반도체 소재는 국가 전략산업의 기반에 해당하는 만큼, 담합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개별 기업의 법적 책임을 넘어 공급망 관리와 납품 관행 전반에 대한 점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현재는 압수수색을 통한 증거 확보 단계다. 검찰은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뒤 업체 간 가격 협의가 실제 있었는지, 공급 물량 조절이 경쟁 제한 효과를 냈는지, 임직원 차원의 관여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혐의가 확정된 것은 아니며, 최종 판단은 수사와 사법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
반도체 업황이 인공지능 수요와 함께 빠르게 회복되는 상황에서 후공정 소재 공급망은 더 민감한 영역이 됐다. 핵심 소재 업체들의 담합 의혹 수사는 가격 결정 구조와 협력사 관리 방식, 반도체 제조사의 조달 체계까지 함께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검찰 수사가 어떤 품목과 계약을 겨냥하는지에 따라 반도체 소부장 업계의 거래 관행도 다시 논의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