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글로벌 증시에서 인공지능 투자 주도주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논쟁이 커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을 확인한 실적에도 주가가 급락하자, 시장 일부에서는 AI 인프라 공급망에 몰렸던 자금이 아마존, 메타, 알파벳 등 초대형 기술기업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CNBC의 투자 프로그램 "매드머니" 진행자 짐 크레이머는 7일 현지시간 방송에서 이날 시장 흐름을 두고 "AI 리더십이 반도체에서 빅테크로 이동하는 첫날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 실적이 강했지만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수준과 비교해 메모리 수요의 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 171조 원, 영업이익 89조4000억 원의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고,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로이터는 삼성전자가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른 메모리 가격 강세로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냈지만, 주가는 6.9%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시장 반응은 실적 숫자와 달랐다. 삼성전자 주가는 실적 발표 당일 큰 폭으로 하락했고, SK하이닉스 등 AI 반도체 관련 종목에도 매도세가 번졌다.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실적을 개별 기업의 성적표로만 보지 않고,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메모리와 하드웨어 수요 전반을 가늠하는 지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크레이머는 반도체주 매도가 기술주 전반의 이탈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그는 투자자들이 AI 공급망 종목에서 차익을 실현하는 대신, 그동안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빅테크로 자금을 옮기는 순환매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날 미국 증시에서는 아마존, 알파벳, 메타, 애플, 엔비디아 등 대형 기술주와 세일즈포스, 어도비, 서비스나우 같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에 매수세가 유입됐다.
논점은 AI 투자의 축이 어디에 놓이느냐다. 지난해와 올해 초까지 시장은 HBM, D램, 서버용 SSD, GPU 등 AI 인프라를 직접 공급하는 기업에 높은 프리미엄을 줬다. 데이터센터 증설 경쟁이 이어지면서 반도체와 장비, 전력 인프라 기업들이 AI 투자 사이클의 1차 수혜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AI 인프라 공급망 주가가 급등한 뒤에는 부담도 커졌다. 주가가 실적 개선 기대를 빠르게 반영한 만큼, 시장은 이제 실적이 기대를 얼마나 더 뛰어넘을 수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2분기 호실적에도 주가가 하락한 것은 "좋은 실적"보다 "더 좋은 실적"을 요구하는 시장 심리가 작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빅테크는 반대편에 있다. 아마존, 알파벳, 메타는 막대한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집행하는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AI 반도체와 서버, 전력 인프라의 최대 수요자이지만, 한동안 투자비 증가 부담으로 주가 흐름이 상대적으로 무거웠다. 시장이 AI 인프라 공급망 피로감을 느끼는 순간, 실제 AI 서비스를 운영하고 데이터센터를 지배하는 빅테크의 가치가 다시 부각된 셈이다.
이런 흐름은 국내 증시에도 곧바로 영향을 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AI 메모리 기대감은 올해 국내 증시 상승을 이끈 핵심 재료였다. 반도체 업종에 대한 외국인 매도가 이어질 경우 지수 전체의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하루의 시장 흐름만으로 추세 전환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계속되는 한 메모리와 HBM, 서버용 반도체 수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로이터도 삼성전자 실적의 배경으로 AI 데이터센터 붐에 따른 메모리 강세를 짚으면서, 세부 실적은 이달 말 확정 발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크레이머 역시 신중한 단서를 달았다. 그는 이날 움직임이 더 큰 변화의 첫날일 수도 있고, 아무 의미 없는 하루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의 주도주가 극적으로 바뀐 것처럼 느껴진 하루였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주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