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인 이른바 "태움"으로 간호사가 숨지는 사건이 반복되는 가운데, 간호현장의 괴롭힘 예방과 피해 회복 지원을 법률에 명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간호인력지원센터에 직장 내 괴롭힘 대응 기능을 부여하고, 정부 실태조사에 인권침해 대응 현황까지 포함하는 내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간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간호사 출신인 이 의원은 간호현장에서 반복되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개인의 인내나 병원 내부 문제로만 둘 수 없다고 보고, 국가 차원의 예방과 피해자 지원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은 간호인력지원센터의 업무 범위에 "간호인력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피해 회복 지원"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간호인력지원센터가 단순한 인력 수급 지원 기능을 넘어, 괴롭힘 피해를 입은 간호사의 상담과 회복, 재발 방지 지원까지 담당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실시하는 간호사 실태조사 항목도 확대된다. 현행 조사 대상에 포함된 인권침해 실태와 일·가정 양립 관련 사항에 더해, 인권침해에 대한 대응 현황까지 함께 조사하도록 했다. 괴롭힘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뿐 아니라, 의료기관이 피해 신고 이후 어떤 조치를 했는지,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 체계가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살피겠다는 취지다.
간호현장의 태움 문제는 오래된 구조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신규 간호사가 업무를 배우는 과정에서 폭언, 따돌림, 과도한 업무 압박을 겪는 사례가 반복됐고, 일부 사건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논란이 커졌다. 그때마다 병원 조직문화 개선과 인력 확충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하거나 신고 이후 보호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번 개정안은 태움 대응을 의료기관 내부 자율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피해 예방, 실태 파악, 피해 회복 지원을 법률상 업무로 규정하면 정부와 공공 지원기관이 개입할 근거가 생긴다. 의료기관별 대응 수준을 비교하고, 반복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현장을 점검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된다.
이 의원은 "생명을 살리는 의료현장에서 간호사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삶을 포기하는 비극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태움은 개인의 인내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의료기관이 함께 근절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개정안은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 논의와도 맞물려 있다. 간호현장의 괴롭힘은 단순한 조직문화 문제를 넘어 인력 부족, 과중한 업무, 교육체계 미비와 연결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신규 간호사가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고, 선배 간호사에게 교육 부담이 집중되면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의원도 이번 개정안이 태움을 근절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와 의료기관, 간호계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며 교육전담간호사 지원 의무화와 적정 간호사 대 환자 수 배치기준 마련 등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 입법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의료현장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안전과 존엄도 함께 보호돼야 한다. 태움 피해를 예방하고 회복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신고 이후 불이익 차단, 피해자 보호, 가해자 조치, 조직문화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번 개정안 논의가 간호사 개인의 고통을 넘어 의료기관의 책임과 국가의 지원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지 가르는 쟁점이 됐다.
박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