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여고생 살인 사건의 초동수사 부실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당시 수사팀 경찰관들을 잇달아 불러 조사하고 있다. 강력팀장이 구속된 데 이어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들까지 조사 대상에 오르면서, 사건은 피의자 범행 자체를 넘어 경찰의 증거 관리와 수사 정보 통제 문제로 번지고 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이날 공무상비밀누설, 증거인멸, 증거인멸 방조 등 혐의로 입건된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 경찰관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전날 광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데 이어 이날도 관련자 조사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대상의 중심에 있는 광산경찰서 강력팀장 A 경감은 전날 구속됐다.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 경감은 장윤기 사건 초기 수사팀장을 맡았던 인물로, 핵심 증거를 압수하지 않거나 증거인멸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장윤기의 아버지가 현직 경찰관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수사팀이 사건 초기 장윤기 아버지에게 수사 상황을 알려줬는지, 압수해야 할 물건을 그대로 두거나 차량을 돌려준 과정에 부적절한 개입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수사 정보 유출 여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논란이 된 물증은 장윤기가 범행에 사용한 SUV와 차량 안에서 발견된 케이블타이다. 당시 수사팀은 SUV를 압수하지 않고 장윤기의 아버지에게 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차량은 피해자의 혈흔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약 보름 동안 운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블타이도 압수되지 않았다. 검찰은 이 물건이 장윤기의 강간살인 범의를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이 현장에서 이를 확보하지 않은 뒤 장윤기의 아버지가 가져갔고, 검찰은 이후 장윤기 아버지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케이블타이를 발견해 압수했다.
장윤기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훼손된 리얼돌 실물도 초기 수사 과정에서 확보되지 않았다. 이후 장윤기의 아버지는 해당 리얼돌과 장윤기가 학창 시절 사용하던 휴대전화들을 불태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방조나 사전 정보 제공이 있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경찰관들을 상대로 장윤기 아버지에게 수사 기밀이 흘러간 경위, SUV와 케이블타이, 리얼돌을 압수하지 않은 이유, 현장 채증 자료 관리 과정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절차상 실수였는지, 특정인을 의식해 증거 확보를 피한 것인지가 수사의 방향을 가를 대목이다.
경찰청도 별도 특별수사팀을 꾸려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특별수사팀은 A 경감을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하고 관련자들을 상대로 수사 기밀 유출 여부와 윗선 개입 가능성, 증거인멸 의혹 전반을 확인하고 있다.
특별수사팀은 “케이블타이를 그냥 놔두라”는 취지의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내부 채증 영상이 삭제됐다는 정황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실제 삭제 지시가 있었는지, 누가 지시했는지, 삭제된 자료가 수사 기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추가 조사 대상이다.
A 경감은 경찰 조사에서 고의성은 없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동수사가 미흡했던 점은 인정하지만 증거를 누락하거나 인멸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핵심 증거로 볼 수 있는 물건들이 현장에서 확보되지 않았고, 일부는 이후 폐기되거나 훼손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책임론은 커지고 있다.
특별수사팀은 전날 장윤기의 아버지를 상대로도 조사를 진행했다. 장윤기 아버지가 수사팀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전달받았는지, 케이블타이와 휴대전화 등을 가져가거나 폐기한 경위, 수사팀과의 연락 내용 등이 조사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장윤기는 지난 5월 5일 0시 11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대학교 인근 도로에서 고등학생 이 모 양을 흉기로 살해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온 고등학생 고 모 군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외국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
장윤기는 첫 재판에서 피해 여학생에 대한 성범죄 목적 범의를 제외한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본류 재판에서는 범행 동기와 성범죄 목적 여부, 양형 판단이 쟁점으로 남아 있다.
경찰 수사팀에 대한 조사는 별개의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살인 사건 피의자의 형사책임과 별도로, 경찰이 사건 초기 핵심 증거를 어떻게 다뤘는지, 현직 경찰관 가족이 연루된 사건에서 수사 공정성이 지켜졌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이번 사건은 초동수사의 실패가 단순한 행정 착오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범행 차량과 케이블타이, 휴대전화 등 주요 물증이 제때 확보되지 않으면서 사건의 실체 규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검찰과 경찰 특별수사팀의 조사가 당시 수사팀 개인의 책임을 넘어 지휘 라인과 조직 내부 통제 문제까지 확인할 수 있을지가 남은 쟁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