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특허 출원의 무게중심이 인공지능(AI) 기술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전체 특허 출원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AI 관련 특허는 연평균 27%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고, 특허를 출원한 기업도 6000곳을 넘어섰다.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 AI 기술혁신의 분야별 구조 진단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015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에 출원된 특허 187만6492건을 전수 분석해 AI 관련 특허 9만9297건을 식별했다.
연도별 비교가 가능한 2015년부터 2023년까지 AI 특허 출원은 2521건에서 1만7609건으로 약 7배 증가했다. 이 기간 AI 특허의 연평균 증가율은 27.4%로, 전체 특허 출원의 연평균 증가율 0.9%를 크게 웃돌았다.
전체 특허 출원에서 AI 특허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1.4%에서 2023년 9.0% 수준으로 높아졌다. 2023년 국내에서 출원된 특허 약 11건 가운데 1건이 AI 기술과 관련된 셈이다. 비AI 분야의 출원이 정체된 상황에서 AI가 국내 특허 증가를 사실상 주도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미국과 중국에서는 전체 특허 가운데 AI 특허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마다 AI 특허를 분류하는 기준이 달라 직접적인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국내 AI 특허의 성장 여력이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기술 개발에 참여하는 기업도 빠르게 늘었다. 해당 연도에 AI 특허를 출원한 기업은 2015년 921곳에서 2023년 6293곳으로 6.8배 증가했다. 기업당 평균 출원 건수는 같은 기간 2.74건에서 2.80건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기존 대기업들이 출원량을 대폭 늘렸다기보다 새로운 기업들이 AI 기술 개발에 합류한 결과로 해석된다.
국내 기업이 차지하는 AI 특허 출원 비중은 2015년 47.3%에서 2023년 59.4%로 높아졌다. 반면 외국 기업의 비중은 같은 기간 20.1%에서 7.6%로 낮아졌다. AI 특허 출원 상위 10개 기업의 비중도 26.1%에서 14.2%로 줄어 기술 개발의 저변이 중소기업과 신생기업으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분석 대상 10개 연도 가운데 9개 연도에서 AI 특허 출원 1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LG전자가 가장 많은 AI 특허를 출원했다.
기술 분야별로는 영상·시각 분야의 출원이 가장 활발했다. 2023년 영상·시각 분야 AI 특허는 7495건으로 집계됐으며 금융·비즈니스 5195건, 언어·텍스트 2335건이 뒤를 이었다. 영상·시각과 금융·비즈니스 분야는 전체 분석 기간 AI 특허의 63.8%를 차지했다.
AI 특허는 기존에 없던 기술을 결합하는 융합성에서도 일반 특허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국내에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국제특허분류 코드 조합을 포함한 비율은 AI 특허가 일반 특허보다 1.5배에서 2.4배 높았다. 특허 표본 규모와 초기 기술 범위를 반영한 분석에서도 AI 특허의 기술 다각화 속도는 일반 특허보다 18.8% 빠른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출원 건수 증가가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기술 융합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생명의료·헬스 분야의 AI 특허는 분석 기간 18.8배 늘어 12개 세부 분야 가운데 가장 높은 양적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새로운 기술의 결합 속도는 가장 더딘 것으로 조사됐다.
언어·텍스트와 음성·청각 분야는 AI 기술 개발과 새로운 기술의 결합이 모두 활발한 "선도형"으로 분류됐다. 농업·식품, 에너지·환경, 보안·인증 분야는 AI 도입 비중은 아직 낮지만 기술 결합 속도가 빠른 "잠재형"으로 평가됐다.
보고서는 선도 분야에서는 한국어 AI 성능 평가 기준을 표준화하고 국제 표준화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잠재형 분야에는 특화 학습데이터 구축과 융합 인재 양성 등을 통해 기업의 기술 개발 진입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