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실종 신고가 접수된 남성이 담당 경찰관의 "무사하다"는 설명을 믿고 사건이 종결된 뒤 51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해당 경찰관은 3개월 넘게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장미란(37) 씨의 최초 실종 신고를 허위로 종결한 의혹을 받는 인물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제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은 전날 제주 도내 모처에서 실종 상태였던 남성 B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유족의 뜻에 따라 구체적인 발견 장소와 사망 시점, 경위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B씨 가족은 지난달 2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A 경장은 가족에게 "B씨와 연락이 닿았고 무사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A 경장은 B씨가 가족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 내부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도 B씨의 실종 관련 내용을 해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들은 담당 경찰관의 말을 믿었지만 B씨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최근 장 씨 장기 실종 사건의 부실 처리 의혹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B씨 가족은 장 씨 사건 보도를 접한 뒤 B씨가 여전히 실종 상태라며 경찰에 다시 신고했다. 경찰은 재신고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B씨 사건 담당자가 장 씨 사건을 처리했던 A 경장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지난 21일 B씨 사건 역시 허위로 종결된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수색에 들어갔다. 그러나 수색을 재개한 다음 날인 22일 B씨는 제주 모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초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51일 만이었다.
B씨 사건이 장 씨 사건과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됐다는 점도 수사 대상이다.
장 씨에 대한 최초 실종 신고는 지난 5월 15일 접수됐다. A 경장은 신고자에게 "장 씨와 연락이 닿았고 무사하다"면서 장 씨가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후 경찰이 장 씨의 휴대전화 통신기록을 확인한 결과 실종 이후 경찰관과 통화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해당 경찰서 자체 조사에서도 A 경장과 장 씨가 통화한 기록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 경장은 최초 신고가 접수된 지 약 2시간30분 만인 지난 5월 15일 오후 9시16분께 장 씨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도 장 씨의 관리 자료가 삭제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시스템에서 실종자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유가 입력됐는지와 A 경장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A 경장을 직무유기와 공전자기록 위작 및 동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장 씨 사건에 이어 B씨 사건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사 범위도 A 경장이 담당했던 다른 실종 사건으로 확대됐다.
제주경찰청은 A 경장이 실종수사 업무를 담당하며 처리한 사건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실종자와 실제로 연락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고자에게 "무사하다"고 안내하거나 실종 사건을 임의로 해제한 사례가 더 있는지가 핵심 조사 대상이다.
장 씨의 행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장 씨의 휴대전화 위치정보 등을 토대로 제주시 한림항 주변에 인력을 투입해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
앞서 22일 장 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한림항 인근에서 발견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경찰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실제 발견된 시신은 장 씨가 아니라 지난달 실종 신고가 접수됐던 별개의 사건 당사자인 B씨였다.
경찰의 실종 사건 처리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실무 담당자가 실종 사건 해제 절차를 직접 처리할 수 있는 구조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경찰청은 담당자가 단독으로 실종 사건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기로 했다. 앞으로 담당자가 해제를 요청하면 팀장이나 과장 등 관리자가 해제 사유와 입력 내용이 실제 보고 내용과 일치하는지 확인한 뒤 최종 승인하는 이중 확인 절차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가족이 경찰의 "무사하다"는 말을 믿는 동안 B씨가 실제로는 실종 상태였다는 사실이 51일 만에 드러났다. 다만 B씨의 정확한 사망 시점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최초 신고 직후 정상적인 수색이 이뤄졌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지는 현재로서는 단정할 수 없다.
한 경찰관이 처리한 두 건의 실종 신고에서 유사한 허위 종결 의혹이 잇따라 확인됐고 한 명은 숨진 채 발견됐으며 다른 한 명은 여전히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담당 경찰관의 사건 처리가 수개월 동안 내부에서 걸러지지 않은 이유와 관리·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이번 수사에서 규명해야 할 문제로 남았다.
백설화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