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하위 30% 국민에게 최대 1000만원을 연 2~3% 금리로 장기간 빌려주고 저소득층의 실손의료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이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대출과 보험, 채무조정 등을 복지 지원이 아닌 국민의 "금융 기본권"으로 제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7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는 10일 "국민기초금융보장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법안 발의 작업에 들어간다.
아직 법안이 발의된 것은 아니다. 토론회를 거쳐 지원 대상과 금리, 재원 조달 방식 등을 구체화한 뒤 입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논의 중인 기초금융법은 국민이 최소한의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 기본권을 접근권과 생존권, 재기권, 자립권, 자산 형성권 등 다섯 가지로 나누고 이를 실제 금융상품과 지원제도로 연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기초 대출"이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은 소득 하위 30%를 대상으로 최대 1000만원을 연 2~3% 수준의 금리로 장기간 대출하는 것이다. 신용도가 낮거나 소득이 적어 은행 대출을 이용하기 어려운 계층이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대출뿐 아니라 보험도 포함된다. 저소득층이 질병이나 사고로 의료비 부담을 떠안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 서민금융진흥원 등이 보험료 일부를 부담하는 형태의 공공 실손보험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기초 상담과 채무 상담도 금융 기본권의 한 축으로 다뤄진다. 빚이 늘어난 이후 채무조정에 들어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금융 상태를 사전에 진단하고 상담과 채무조정, 보험, 대출, 저축을 단계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다.
마지막 단계에는 "기초 저축"이 놓인다. 취약계층이 부채를 정리한 뒤 다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저축을 지원해 금융시스템 안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제도가 현실화되면 현재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서민금융 체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법안에는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합해 가칭 "금융권익원"을 만드는 방안도 포함될 예정이다. 정책서민금융 공급과 채무조정 등으로 나뉜 기능을 하나의 기관으로 묶어 상담부터 재기까지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금융 기본권 도입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오는 10일 토론회에서는 김상봉 한성대 교수가 금융 기본권 도입에 따른 경제·사회적 효과를 발표한다. 김 교수는 신용회복위원회가 발주한 관련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을 비롯해 신복위 "금융 기본권 연구단" 소속 유경원 상명대 교수와 한재준 인하대 교수 등도 토론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금융 기본권 논의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신용회복위원회는 지난 6월 국회에서 금융 기본권 연구단을 출범시키고 관련 제도의 법제화 작업을 진행해왔다.
당시 금융 기본권은 금융서비스에 차별 없이 접근하고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공정한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라는 개념으로 제시됐다.
법제화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재원이다.
기초 대출을 저금리로 공급하고 보험료를 지원하려면 지속적으로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다. 기존 정책서민금융 재원만으로 새로운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김은경 위원장은 서민금융진흥원 출연금을 내는 금융업권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현재 금융회사 중심인 재원 부담을 금융투자업계와 가상자산업계까지 넓히는 방식이다.
금융권의 추가 부담을 둘러싼 논쟁도 예상된다. 금융회사 등의 출연금이 확대되면 사실상 새로운 비용 부담이 될 수 있어 지원 규모와 부담 주체를 놓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도 법안 설계 과정에서 다뤄야 할 부분이다. 저금리 대출이 기존 고금리 부채를 대체하고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는 방향으로 사용될지, 새로운 부채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대상자 선정과 상환 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소득 하위 30%라는 기준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할지 개인소득을 기준으로 할지, 기존 부채와 자산을 심사 과정에서 얼마나 반영할지 등 세부 기준은 앞으로 논의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거론되는 "최대 1000만원·연 2~3%" 역시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 법안 마련 과정에서 검토되고 있는 방안이다.
기초금융법이 실제 입법 단계에 들어가면 논쟁의 중심은 금융을 어디까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으로 볼 것인지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저소득·저신용자를 고금리 시장에서 끌어내는 안전망을 만드는 동시에 그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가 법안 통과 과정에서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문제다.
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