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운용하는 주요 전투기의 비행거리 비교 자료가 공개되면서 양국 공군의 장거리 작전 능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의 F-15K가 약 1,800km로 비교 자료에서 가장 긴 비행거리를 기록한 가운데, 일본의 F-15J와 양국이 운용하는 F-35A, 한국형 전투기 KF-21의 성능 차이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온라인에 공개된 한일 전투기 비교 이미지에는 양국의 주요 전투기 10개 기종과 각각의 비행거리 수치가 제시됐다. 한국 F-15K가 약 1,800km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으며 일본 F-15J는 약 1,600km, 한국과 일본이 함께 운용하는 F-35A는 약 1,090km로 표시됐다. 한국이 개발한 KF-21은 약 1,000km로 소개됐다.
다만 해당 자료는 항속거리와 전투행동반경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있어 수치를 그대로 비교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 항속거리는 항공기가 연료를 사용해 이동할 수 있는 총거리를 뜻하며, 전투행동반경은 기지에서 출격해 임무를 수행한 뒤 복귀할 수 있는 작전 범위를 의미한다. 두 수치는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다.
F-15K의 전투행동반경 1,800km는 과거 공군 관련 보도에서도 제시된 수치다. 국방일보는 F-15K의 작전지속 능력을 소개하면서 1,800km 수준의 행동반경과 약 3시간의 체공 능력을 설명했다. 반면 최대 항속거리는 약 4,500km로 알려져 있다.
일본 항공자위대의 공식 자료에는 F-15J의 항속거리가 약 4,600km로 기재돼 있다. 따라서 비교 이미지의 F-15J 수치인 1,600km를 공식 항속거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기체의 연료 탑재량과 외부 연료탱크 장착 여부, 무장 구성에 따라 실제 비행 가능 거리는 달라진다.
한국의 F-15K는 미국 보잉의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을 한국 공군의 운용 요구에 맞춰 개량한 장거리 다목적 전투기다. 공중전뿐 아니라 지상 및 해상 표적에 대한 정밀타격 임무도 수행한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을 운용할 수 있어 한국 공군의 핵심 타격 전력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장거리 비행 능력은 독도와 이어도 등 육지에서 떨어진 해역의 항공작전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전투기가 작전지역에 도달하는 것만으로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머물며 초계하거나 위협에 대응하고, 기지까지 복귀할 수 있는 충분한 연료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도 주목할 기종이다. KF-21은 국내 기술을 중심으로 개발한 4.5세대 다목적 전투기로, 최대속도 마하 1.81과 약 2,900km의 항속거리를 갖춘 것으로 소개된다. 올해 5월 전투용 적합 판정을 획득했으며, 9월 22일 양산 1호기가 공군에 인도됐다. 다만 첫 기체 인도가 전체 전력화 완료를 뜻하지는 않는다. 공군은 2027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작전 투입을 추진하고 있다.
KF-21의 원거리 작전 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공중급유 기술도 확보됐다. 방위사업청은 2024년 3월 KF-21 시제기의 공중급유 비행시험 성공을 발표하면서 1회 공중급유로 작전반경이 최소 약 50%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투기 자체의 연료 탑재량뿐 아니라 공중급유 지원체계가 장거리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도입한 F-35A는 장거리 비행 능력에 스텔스 성능을 결합한 5세대 전투기다. 영국 공군이 공개한 제원에는 내부 연료 기준 전투행동반경이 약 1,093km, 항속거리는 약 2,200km 이상으로 제시돼 있다. 레이더 탐지를 줄이는 기체 설계와 센서 융합 능력을 갖추고 있어 단순한 거리 비교만으로 작전 능력을 평가하기 어렵다.
일본의 F-35B도 별도의 운용 특성을 지닌다. F-35B는 단거리 이륙과 수직착륙이 가능한 기종으로, 일반 활주로뿐 아니라 짧은 비행갑판을 갖춘 함정에서도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공개 제원상 전투행동반경은 약 833km다. F-35A보다 비행거리는 짧지만 작전기지를 선택할 수 있는 유연성이 특징이다.
비교 이미지에는 이 밖에도 일본의 F-2A가 약 830km, 한국의 KF-16이 약 740km, FA-50이 약 550km, TA-50이 약 500km로 표기됐다. 일본 F-2B는 약 830km로 제시됐지만 순위는 10위에 배치돼 있어 수치와 순위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들 기종의 수치 역시 동일한 시험 조건에서 산출됐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의 FA-50은 경공격과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항공기이며, TA-50은 전술입문훈련에 중점을 둔 기종이다. F-15K처럼 장거리 정밀타격을 주 임무로 하는 전투기와는 설계 목적부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비행거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기종의 전술적 가치를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현대 공중전에서는 항공기의 비행거리 외에도 레이더 탐지 능력, 탑재 무장, 스텔스 성능, 전자전 대응 능력, 조기경보통제기와의 정보 공유 등이 작전 결과에 영향을 준다. 특히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공중급유 지원 여부는 개별 전투기의 기본 제원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요소다.
한일 양국의 전투기 운용 환경도 다르다. 한국은 한반도 방공과 지상·해상 표적에 대한 정밀타격 능력을 함께 확보해야 하며, 일본은 넓은 해역과 다수의 도서 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항공전력을 운용하고 있다. 같은 기종이라도 실제 임무에 필요한 연료와 무장 구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비교 자료는 한국 F-15K의 장거리 작전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투기 성능 비교에서 산정 기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냈다. F-15K의 1,800km는 기존 군 관련 보도로 뒷받침되지만, 나머지 기종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됐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결국 한일 전투기의 실질적인 작전 능력을 비교하려면 동일한 무장과 연료 조건을 적용한 전투행동반경을 비롯해 공중급유, 작전지역 체공시간, 임무 수행 능력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단순한 비행거리 순위가 양국 공군의 실제 전투력 차이를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가 남은 쟁점이다.
이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