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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말 (이석)

이석 | 승인 22-09-06 23:45 | 최종수정 22-09-08 12:4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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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섬에서 뭍으로 나가는 마지막 배가 내일 오전 열 시,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그것이 군•경 수송부의 마지막 대민지원 선박입니다. 육지로 나가시면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 최후를 함께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 정부의 방침에 따라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섬에 남기를 희망하는 분들을 굳이 말리진 않겠습니다. "

최원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리곤 성호를 긋고 두 손 모아 잠시 묵도를 드렸다. 애써 담담하려 했지만 침통한 표정이 설핏 비쳤다.

쪽빛 바다가 활연히 펼쳐진 남해의 지초도. 

섬의 동쪽 끄트머리, 야트막한 동산에는 언덕배기가 늘씬하게 뻗어 있었다. 언덕 끝, 깎아지르는 절벽을 따라 너설 틈바구니에는 기이하게 굽어진 해송이 성긴 간격으로 솟아 있었다. 이따금씩 두루미들이 날아와 노닐었다. 그 밑으로는 따개비가 더덕더덕 들러붙은 갯바위 군락이 장성한 사내의 울대뼈처럼 융기해 있었다. 파도는 속절없이 거기를 후려댔고, 그때마다 하얀 물거품이 드높게 솟구쳤다.

한때는 이곳 지초도에도 솔찬히 많은 주민들이 살았었지만, 하나 둘 육지로 떠나며 알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빈자리를 외지 사람들이 주말마다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천혜의 풍광을 만끽했다. 셈이 빠른 사람들은 언덕배기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체험케 하며 쏠쏠한 벌이를 했다.

토착민들이 떠나면서 덩그러니 남은 폐교를 매입한 사람은 지초도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최원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몽땅 털어 건물을 보수하고 요양원을 무료로 운영했다. 형편이 여의치 못한 늘그막의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최원장은 아내를 여읜 후에는, 알량한 영욕에 등불을 꺼버리고 여생을 봉사로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두 딸의 간곡한 마지막 부름과 그 손주들의 어여쁜 칭얼거림에 못 이겨 결국 가족과 해후하기로 마음먹었다.

불과 하루 전이었다. 늘 그렇듯 취침 전에 열명 남짓 요양원의 노인들은 이곳에 하나뿐인 텔레비전 앞에 모두 모여 9시 저녁 뉴스를 보곤 했다. 백발이 성성한 서 씨가 휠체어에 앉아 볼멘소리를 했다.

"아, 영화 말고 뉴스를 좀 틀어 보드라고. 암만 섬에 산다 해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좀 알아야지 않것어?

리모컨을 쥐고 있던 심 씨 할머니는 쭈글 쭈글한 손으로 채널을 아래로 돌렸다가 다시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 여가 9번이 맞는디. 와 뉴스가 안 나오노. "

그도 그럴 것이 늘 보던 뉴스에는 앵커가 없었다. 그 대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우주 영상만 나왔다. 지구라고 짐작되는 푸른 별 곁으로 무섭게 돌진하는 소행성의 영상이었다. 화면의 아래에는 붉은 글씨로 줄곧 자막이 떠나지 않았다.

' 미 항공우주국 NASA,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 23시간으로 예측'

뉴스에는 서로 멱살을 쥐고 흔드는 정치인들도 없었고 생활고를 비관한 소시민의 자살 뉴스도 없었다. 기업의 비리 뉴스도 없었고 스포츠 소식도 없었다.

노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자막만이 연신 올라왔다. 

소행성의 접근을 조기에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NASA가 201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로 떨어진 소행성도 대응 가능한 시점까지 관측하지 못했다는 고백. 

남미 지역의 관측소에서 미쳐 발견 못한 소행성이 지구로 향하고 있다는 자막.

그 소행성의 크기, 질량과 속도를 뒤늦게 가늠한 결과 지구와 분명히 충돌하며 사실상 인류의 최후가 될 것이라는 경고.

국가의 재해 대비 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최후까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스스로 지켜 치안의 혼란을 막아달라는 국가 원수의 메시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최후의 순간을 함께 하자는 범세계적 선언.

유엔사무총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인류를 향해 고별인사를 했다. 이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2018년 자신이 집권한 이후 NASA의 ARM, '소행성 궤도 변경 임무'의 예산을 전액 삭감 한 것에 대하여 고개 숙여 사죄했다. 물론 그 연구가 계속되었다고 해서 이번 참사를 현실적으로 막을 순 없었을 것이라는 과학적 설명도 발표되었다.

섬마을 노인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을 풀어서 이야기해준 사람은 최원장의 제자로, 섬마을 요양 보호사를 자처한 정 간호사였다. 낮 동안 얼빠진 사람처럼 지내던 정 간호사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쉬운 언어로 노인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 어느 날 멀리서 날아온 크고 무거운 돌덩이가 지구에 와 부딪혀 공룡들이 사라졌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사라진대요... "

그것이 노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실제의 끔찍함을 순화시킨 정 간호사 나름의 설명이었다.

어떤 뉴스에서는 학자들의 과학적 설명을 토대로 제작된, 종말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여줬다. 그 내용은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공포스러웠다.

대지가 소행성 충돌 지점부터 물결처럼 출렁거리며 바깥으로 쓸려나갈 것이라는 설명.

육중한 지각 파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릴 것이라는 내용.

돔 모양으로 솟은 암석 증기가 무쇠도 녹일만한 뜨거운 화마가 되어 되어 급기야 폭풍처럼 사방으로 질주할 것이라는 설명

하나같이 여든 살 남짓의 요양원 노인들이었다. 늘 죽을 날을 염두 해왔기에 종말에 있어서 달관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평정심을 가질 수 없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졸도하는 노인이 둘 있었다. 

모든 노인들도 한때는 어린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뛰놀던 푸른 산천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생각에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소스라칠 공포에 침잠 된 노인들은 그 무슨 집단 최면에 빠진 사람들처럼 일시적인 실어증을 겪었다. 벼루를 엎지른듯 암흑의 미래가 도래하고 있었다.

괘씸하기 짝이 없게도 부모 모시기를 꺼려 했던 자식들이었지만, 종말이 오는 마당에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노인도 있었다. 

제 새끼가 똥오줌 못 가리는 건 귀여워해도 낳아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뒤치다꺼리라며 싫어라 하던 천하의 후레자식들. 그런 자식이라도 노인들은 종말 앞에서만큼은 용서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재산도 꿍쳐놓지 않았던 순진한 노인들은 차라리 행려병자의 신분이 되어 요양원에 오고자, 숫돌에 열 손가락 지문을 모두 갈아 없애 버리기도 했었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부성애는 어떤 면에서는 염병 맞도록 끔찍해 보였다.

늘 조용하던 요양원의 전화는 종말을 앞두고 연신 울려댔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못난 자식입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 지구에서의 마지막 날만큼은 꼭 한 번 안아보고 싶어요. 제가 마지막 배를 타고 모시러 갈게요. " 

꼬장꼬장 자존심을 내세우던 영감, 할멈들도 종말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뭍으로 가 손주들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 오매... 내 새끼, 느이들 곁으로 내 가구마. 뭍으로 내 가구마." 

종말과 죽음의 의미를 아직 모를 새 어린 손주들의 재잘거림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오구 오구. 이 할미 품으로 오려무나. 아가. 무서워 말 그라. 할미가 품에 꼬옥 안아 주구마."

" 내 새끼들, 올마다 컷을 고. 이 할아비는 니들이 보고 싶어 몬살겠구나."

깡깡 얼어붙었던 비정은 종말이라는 극한의 최후 앞에서 조금씩 녹아 물방울을 떨궜다.

다음 날 아침, 최원장을 필두로 군경 여객선에는 요양원 사람들이 줄지어 승선했다. 아직 섬에 남아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가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해후하려는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딱 한 사람만 예외였다. 

여식이 없고 몸이 성치 못한 서 씨 할아버지였다. 그는 젊은 날, 텅스텐 탄광에서 일하다가 매몰 사고가 나는 바람에 왼쪽 다리를 잃었다. 늘 얼굴에 그늘이 있었고 안 그래도 왜소한 몸이 한 쪽 다리를 잃어 더욱 왜소해 보였다. 

요양원 사람들의 처지가 다 고만고만했지만 서 씨는 더욱 안쓰러웠다. 다른 이들처럼 두 다리로 걷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늘 그의 가슴을 못 견디게 후벼팠고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 내는 가족이 없소. 성치 못한 몸으로 어디 가기도 힘들고. 이 섬이 차라리 내 고향 같아 이곳에 끝까지 있겠소. 이제 열 시간이면 모두가 사라질 터인데 천국에서 보면 좋것소."

애써 쓸쓸한 낯빛을 감춘 서 씨는 휠체어에 앉아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배에 올라탄 사람들은 뭍으로 출발함과 동시에 역시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홀로 남은 서 씨를 향해. 정들었던 섬을 향해.

천문 과학자들은 소행성의 충돌 예상 시각을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그것은 학자로서의 사명감이었을까. 그와 함께 인류의 축복을 비는 종교인들의 기도가 흘러나왔다. 

서 씨는 라디오 건전지를 새로 갈아 넣고 방송을 줄곧 경청했다. 황망한 마음으로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쪽빛 바다는 몇 시간 후 있을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오히려 물비늘을 빤작였다. 그 위로 두루미가 유유히 날아다녔다.

물가의 목새 위에는 두루미가 한 쪽 다리로 서서 잠들기도 했다. 그러다 날개를 펼쳐 시원스레 바다 위를 활공한다. 서 씨는 넋을 놓고 한참이나 두루미를 바라보았다.

'나도 죽기 전에 니들처럼 한 번 날아보고 싶구나.'

그때 마침, 서 씨의 목에 걸어둔 휴대용 라디오에서 대한민국 국토의 소멸까지 남은 시간이 이제 다섯 시간 남짓이라는 정부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방송에서 새어 나온 그 음성이 서 씨의 뇌리에 연신 맴돌았다. 지긋이 눈 감은 서 씨의 속눈썹이 길고 해끗하다. 해풍에 나부꼈는지 서 씨가 긴장했는지 속눈썹은 가늘게 떨렸다. 그러다 뭔가 작심한 듯 서 씨는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앙다문다. 그리곤 두 손아귀에 힘을 잔뜩 실어 바퀴를 굴렸다.

섬에 수 년을 머물면서도 휠체어를 탄 몸이라 단 한 번도 오를 엄두를 내지 않았던 동산의 언덕으로 향했다. 계단이 없고 경사가 가파르지도 않았지만 휠체어를 탄 몸으로 오르기엔 매우 버거웠다.

지구 종말의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라디오에서는 유명 인사들의 고별인사가 나왔고 종교인들의 기도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이 이제 세 시간이라는 말이 무겁게 새어 나왔다. 

거대한 공포에 압도될 법도 했지만 서 씨는 종말이 다가올수록 안간힘을 쓰며 언덕을 향해 나아갔다. 바퀴는 얕은 경사도 오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죽을힘을 다해 오르면 허망하게 제자리로 돌아가버리는 시지푸스의 돌과 같은 운명이었다. 

팔이 후들거렸다. 숨이 턱까지 찼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다시 언덕을 올랐다. 밀려나면 또다시 바퀴를 굴렸다. 이마에서 구슬 땀이 떨어졌다. 웃옷은 이미 흥건했다. 답답할 정도로 더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씨는 조금씩 조금씩 언덕의 정상을 향했다. 해감내 풍기는 소금꽃이 등허리에 버쩍버쩍 피어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삼십 분이면 진작 올랐을 높이의 언덕이지만 서 씨의 휠체어로는 세 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이 이제 한 시간뿐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 양옆으로는 새밭이 났다. 휘갈기는 바람에 억새풀이 불안하게 흔들거렸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바퀴를 굴리는 서 씨의 손끝이 갈라지고 피가 났다. 그러나 서 씨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언덕을 향해 바퀴를 굴렸다.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 20 분. 라디오에서는 한 원로가 인류에게 사랑과 용서를 설파하고 있었다. 국가 원수의 고별인사도 잠시 나왔다. 이제 소행성이 지구에 거의 근접했다는 소식도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졌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죽을힘을 다해 기어이 언덕 정상에 올랐을 때,

서 씨의 팔뚝에는 시푸른 핏줄이 도드라 났다.

그때, 라디오에서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메인 뉴스 진행자 중 가장 오랫동안 신뢰를 받고 있는 앵커였다. 정제된 언어였지만 울먹거림이 전해져왔다.

" 마지막까지 국민 여러분께 방송을 하게 되어 참으로 영광이었습니다. 베테랑 앵커인 저도 더 이상은 침착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소행성 충돌까지 10분이 남았습니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멘트이며 저도 이제 스튜디오에 와있는 제 가족들을 꽉 끌어안을 생각입니다. 국민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이를 끝으로 더 이상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서 씨는 목에 걸었던 라디오를 빼내 휙 던져 버렸다. 그리곤 오늘 아침에 황급히 배에 오르느라 레포츠 업체 직원들이 아무렇게나 팽개쳐둔 패러글라이더 하나를 쥐었다. 그 손이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서 씨는 요양원의 창가에서 늘 이 시간 즈음에 언덕을 내리 달려가며 패러글라이더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 해왔다.

지초도의 저녁 놀이 탈 때쯤이면 해풍은 보통 언덕 쪽으로 세차게 불어왔다. 빼어난 눈썰미를 가진 서 씨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 너무 오래 걷지 못했던 이 몸뚱어리여. 종말이 오더라도 어디 한 번 날아보자'

서 씨는 다리를 잃기 전 군대에서 낙하산을 타봤던 기억을 더듬었다. 패러글라이더는 조금 달랐지만 그 구조를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미 언덕을 오르느라 너무나 기진맥진한 상태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서 씨의 귓가엔 초침 소리가 들려왔다. 사력을 다해 패러글라이더를 등에 업었다. 휠체어가 위태롭게 기우뚱거렸다. 정신을 집중하고 한 쪽 발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가까스로 허리와 엉덩이를 붙들어주는 패러글라이더의 받침대에 몸을 고정시켰다.

마침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훅- 등을 떠밀었다. 마지막 한 방울의 힘을 쥐어짜 휠체어의 바퀴를 힘껏 굴렸다. 내리막길이라 가속도가 붙었다. 이윽고 몸이 붕 떴다. 이때를 놓칠세라. 오른발로 휠체어를 콱 찼다. 그것이 덤불에 처박혔다. 후련했다. 조정 끈을 억세게 드잡았다. 쾌청한 바람이 뺨을 때린다. 등줄기를 구르던 땀방울이 사-악 식는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부둥켜 안은 채 종말을 맞이했고 또 누군가는 압도하는 두려움에 이미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질곡 많던 인생에 서 씨는 결국 홀로 남았다. 종말을 앞두고 이것을 시도하는 것은 누군가 부질없는 짓이라며 비웃을 줄 모른다. 서 씨는 다만 육신의 자유로움을 맛보고 싶었다. 오직 그뿐.

패러글라이더는 어느새 서 씨의 날개가 되었다. 언덕을 벗어나 노해를 지나고 바람을 가르며 바다 위를 활공했다. 그것은 그가 만끽한 일생일대의 황홀경이었다. 태양은 바다 위에 이글거리며 넘실댔다. 서 씨는 영영 볼 수 없을 지구의 영정(影幀)을 담뿍 가슴에 담으며 그득한 눈물을 뿌렸다. 

종말 1분 전이었다. 

' 아름다운 지구여. 이젠 안녕. 너무나 덧없는 그래서 더 서글펐던 인생이지만, 최후의 순간만큼이라도 나는 꼭 한 번 원 없이 날고 싶었어. 그걸로 됐어... 그걸로 족해... 암, 그렇고말고. '

사위어가는 마지막 태양은, 와락 껴안아 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 만큼 서운한 자태로 수평선 뒤편에 슬몃 숨는다. 노을 낀 창공을 휘가르는 해풍에 그의 왼쪽 빈 바짓가랑이가 자유롭게 펄럭이고 있었다.

<이석 작가, 2022년 8월의 인문학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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