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를 향한 여권의 불신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 문제로 번지며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내란 사건 재판 지연과 대선 개입 의혹을 고리로 더불어민주당이 당대표까지 나서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는 가운데, 대통령실 역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며 원론적 수준에서 공감의 뜻을 밝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동시에 사법부 수장의 퇴진을 압박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갈등의 중심에는 최근 사법부의 주요 판결과 재판 진행에 대한 여권의 누적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직전, 대법원이 당시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을 두고 여권은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며 날을 세워왔다. 여기에 최근 내란 혐의로 기소된 핵심 피의자들의 재판이 지연되는 상황까지 더해지자, "사법부가 의도적으로 재판을 늦추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기류 속에서 15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미 법원 내부의 신뢰를 잃었고, 스스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에 이은 공개적인 사퇴 요구로, 민주당 지도부가 '조희대 사퇴론'을 공식화했음을 의미한다. 정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와 비교하며 "침대 축구를 하고 있다"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재판부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특별한 입장은 없다"며 직접적인 개입에는 선을 그었지만, 강유정 대변인을 통해 "사퇴 요구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사실상 여권의 문제 제기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조 대법원장을 향한 압박의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았다. 김민석 국무총리 역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민들이 사법부에 실망하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민주당의 공세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를 "사법부 장악을 위한 독재의 시작"으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신성범 의원은 "여당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거론하는 것은 결국 사법부를 길들이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며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서 조 대법원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사법부 내부는 크게 술렁이는 분위기다. 정치권의 압력에 사법부 수장의 거취가 흔들리는 선례를 남길 경우, 재판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여권이 사법개혁을 명분으로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조 대법원장을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한국 사회의 법치주의를 시험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