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생산공장을 짓지 않는 제약사에 100% 관세를 물리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당초 예고했던 10월 1일(현지시간) 관세 부과 시행을 전격 보류했다. 이는 '관세 폭탄'이라는 강력한 압박 카드를 활용해 다국적 제약사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인 뒤, 대규모 대미 투자와 약가 인하를 얻어내는 실리를 챙기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일, 백악관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의약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현재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과 대미 투자 및 약가 인하를 골자로 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관세 부과를 실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수정에는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Pfizer)의 발 빠른 대응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미국에 제조 공장을 짓지 않는 기업의 의약품에 10월 1일부터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며 제약업계를 압박했다. 이에 화이자는 즉각 700억 달러(약 98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미국 내 신약 판매 가격을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에 합의했다.
화이자의 '백기 투항'에 가까운 제안에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화이자에 대한 3년간의 관세 부과 유예를 약속하며 화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화이자 모델'을 다른 제약사들과의 협상에서도 기준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100% 관세를 피하고 싶다면 화이자에 준하는 대미 투자와 약가 인하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이자의 선례 이후 다른 다국적 제약사들도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상무부와 물밑에서 치열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기존 의약품의 대미 판매 가격 인하, 신약 가격 책정 시 미국을 최혜국으로 대우하는 방안 등을 놓고 미국 측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실제 관세 부과 없이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를 관철하며 자국 내 제조업 기반 강화와 의약품 가격 인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압박식 협상 방식이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 위축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