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국정농단" 특검팀이 통일교의 대선 개입 및 현안 청탁 의혹을 수사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 시절 편성된 1300억 원 규모의 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이 정상적인 심의 절차를 건너뛴 사실이 27일 확인됐다. ODA 사업을 총괄하는 국무조정실의 심의·의결 과정이 통째로 생략되고, 기획재정부가 이 예산을 독단적으로 편성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통일교 맞춤형 예산"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이번 의혹은 최근 "건진법사" 전성배 씨의 법정 증언으로 다시 불거졌다. 전 씨는 재판 과정에서 통일교 측으로부터 6천 2백만 원 상당의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백 등을 받아 김건희 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특검은 이 금품이 캄보디아 ODA 사업 확대 등 통일교 관련 현안을 청탁하는 대가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27일 MBC가 확보한 국무조정실의 국회 보고 자료에 따르면, 이 캄보디아 민간협력전대차관 사업은 통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본래 ODA 사업은 국제개발협력기본법에 따라 각 부처의 계획안을 국무조정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고, 이 결과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1300억 원 규모의 해당 사업은 이 시행계획 수립 단계와 국무조정실 위원회 심의 과정이 통째로 생략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무조정실은 이러한 "패싱" 사실조차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국회 질의에서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 들어있지 않은 사업이 정부 예산안에 편성된 것을 확인했다"며 "기획재정부에서 국무조정실을 거치지 않고 예산실에 곧바로 제출한 것 같다"고 밝혔다. 사실상 예산이 편성된 후 국회 심의 단계에서야 ODA 총괄 부처가 사안을 파악한 것이다.
해당 사업의 졸속 추진 정황은 예산 편성 내역에서도 드러난다. 이 사업은 2024년 기준 50억 원이 시범 편성됐으나, 수출입은행은 "내부 절차 마련에 시간이 소요됐다"는 이유로 전액을 사용하지 못하고 2024년 11월 불용 처리했다. 불과 50억 원의 예산조차 집행할 근거를 마련하지 못했던 수은이, 불용 처리 불과 한 달 만에 26배에 달하는 1300억 원의 예산을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 지원 명목으로 신규 편성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야당은 이 비상식적 예산 편성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고 비판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찬대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대한민국의 연구개발(R&D) 예산은 5조 원 넘게 삭감하면서, 캄보디아 ODA 예산을 급하게 늘렸다"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국무조정실 심의를 패싱하고 1300억 원이 편성된 배경과 과정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졸속 추진은 지난해 2월 최상목 당시 부총리가 "획기적 방안"을 모색하며 ODA 사업 승인 기간의 "대폭 단축"을 지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은 이 회의 이후 타당성 조사를 생략하는 등 "신속 집행"에 초점을 맞췄다. ODA 사업은 통상 엄격한 문서화와 절차를 거치는 것이 원칙이나, 이번 사태로 국제 원조 사업의 투명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논란이 거세지자 수출입은행은 최근 국회에 "향후 예산 신청 전 적정성을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