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어제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공직자를 조사하기 위한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설치 안건을 스스로 절차를 위반하며 무산시키려다 제동이 걸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인권위의 최고 의결 기구인 전원위원회에서 일부 위원들이 TF 설치를 구두 발의한 뒤 다수결로 반대 의결을 시도했으나, 이는 인권위 내부 운영 규칙을 명백히 어긴 "셀프 거부" 행태로 지적받으며 내부와 외부의 거센 반발을 초래했다. 특히 TF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조사 자체를 무산시키는 데 합세했다는 점에서 "셀프 면죄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어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는 소관 부서의 의안 작성 및 사전 등록 절차를 무시하고 구두로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설치 관련 안건이 갑작스레 상정되었다. 안창호 위원장이 해당 안건에 대해 묻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발의했고, 김용원, 이한별 위원이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참석 위원 8명 중 안 위원장과 한석훈, 김용원, 이한별, 강정혜, 김용직 위원 등 6명이 설치 반대에 표를 던졌다. 이들은 반대 이유로 공무원 인권 침해 소지나 중복 감사 가능성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위원장은 참석 위원의 과반수 반대를 이유로 의결을 선포하고 의사봉을 두드렸으나, 곧바로 절차적 위반 문제가 불거졌다. 인권위 운영 규칙에는 '소관 부서가 의안을 작성하고 회의 10일 전까지 의안상정 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회의 직후 사무처 역시 위원장에게 "구두로 안건을 발의하는 절차는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고, 결국 해당 안건은 다음 전원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번 사태는 인권위의 객관성과 중립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설치 반대에 표를 던진 6명의 위원 중 안창호, 김용원, 한석훈, 이한별, 강정혜 5명은 지난 2월 이른바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에 찬성한 전력이 있으며, 이들은 현재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특검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TF의 주요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들이 조사 기구 설치를 거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및 공정성 상실에 대한 비판이 집중된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위원장과 일부 위원들의 "내란 비호"에만 집중하는 듯한 행태에 대한 반발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인권위 내부망에는 "해당 위원들은 TF의 당연 조사 대상으로 '셀프 면죄부'라는 오명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위원장이 반려하더라도 TF 구성에 찬성하는 자체 실행안을 올리자"는 등 격앙된 비판 글이 이어졌다. 인권위 노조 역시 성명을 통해 "안 위원장과 내란에 동조했던 인권위원들은 인권위 역사에 오욕으로 청산해야 할 때"라고 규정하며 이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7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 역시 안 위원장의 사퇴를 거듭 촉구하며,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 씨의 침묵과 비호는 그 자체만으로도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이번 TF 설치 반대 이유와 사퇴 의사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의에 일절 답변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