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계대출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가계대출을 보유한 차주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사상 처음으로 9,700만 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출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분기 연속으로 1인당 채무 규모가 늘어나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가계의 이자 부담 심화에 따른 내수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40대와 50대뿐만 아니라 30대 이하 청년층의 대출 잔액까지 일제히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721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전체 가계대출 잔액 역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913조 원을 기록하며 6분기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주목할 점은 대출을 보유한 전체 차주 수는 1,968만 명으로 202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출 총액과 인당 잔액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신규 대출자 유입은 줄어든 반면 기존 대출자들의 차입 규모가 확대되거나 고액 대출 비중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연령대별 분석 결과를 보면 40대의 부채 부담이 가장 압도적이다. 40대 차주의 1인당 평균 은행 대출 잔액은 1억 1,467만 원에 달해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1억 원을 상회했다. 주택 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과 자녀 교육비, 생활 자금 수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50대 역시 9,337만 원으로 뒤를 이었으며, 30대 이하 청년층의 잔액도 7,698만 원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산 형성기에 있는 청년층과 소득 정점에 있는 중장년층 모두가 빚의 굴레에 갇혀 있는 셈이다. 다만 60대 이상 고령층의 잔액은 7,675만 원으로 전 분기 대비 소폭 감소하며 유일하게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자 부담의 가중은 가계 소비 여력 축소로 직결되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소득의 상당 부분이 대출 원리금 상환에 투입되고 있으며, 이는 곧 자영업자들의 매출 감소와 내수 경기 부진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1인당 대출 규모가 커질수록 금리 변동에 따른 민감도가 높아져, 향후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질 경우 한계 차주들의 부실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에서는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감에 따른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투자의 여파가 여전히 대출 잔액에 반영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는 등 강력한 억제책을 펴고 있지만, 이미 불어난 기보유 대출의 규모 자체가 워낙 커 잔액 감소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박성훈 의원은 "1인당 대출 잔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9분기 연속 증가했다는 것은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시사한다"며 "연령대별 맞춤형 부채 관리 대책과 함께 고금리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 금융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