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ㆍ문화 라이프 오피니언 의료
 

 

칼럼) "한덕수" 전 총리 몰락, 자업자득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 입력 26-01-22 11:19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최고 권력의 곁을 지켜온 관료는 드물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다섯 정권을 넘나들며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주미대사까지 오른 한덕수 전 총리는 오랫동안 ‘정통 엘리트 관료의 상징’으로 불렸다. 관운(官運)의 정점, 처세의 달인이라는 평가는 그의 이력과 함께 늘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공직 인생의 결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라는 오명 앞에 멈춰 섰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 1970년 관세청 사무관으로 시작된 그의 경력은 한국 관료 사회의 교과서처럼 정갈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통상 관료로,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통상 실무의 핵심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미대사로 중용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살아남았고, 때로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섰다. 관가에서 그를 조선과 고려의 임금을 두루 섬긴 황희 정승에 빗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를 떠받친 힘은 전문성 못지않게 ‘무색무취의 처세술’이었다. 시대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고, 권력의 기류를 정확히 읽어내는 감각. 그러나 그 처세는 언제나 중립의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 가치의 기준 위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국무총리로 기용되면서, 한덕수의 정치적 무게중심은 급격히 한쪽으로 쏠렸다. 과거라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을 입법부와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았고, 야당과의 갈등 국면에서는 조정자보다 대변인의 역할을 택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강경한 국정 운영 기조를 충실히 옹호하는 모습은, 그를 알던 관료 사회 인사들에게조차 낯설게 비쳤다.

결정적인 순간은 12·3 비상계엄 국면이었다. 국회에서는 “계엄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지만, 정작 현실의 밤 앞에서 그는 헌법 수호의 최후 방파제가 되지 못했다. 적극적인 반대 대신 침묵과 동조의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은 법정에서 ‘부역’이라는 단어로 규정됐다. 이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판단 역시, 헌정 질서보다는 정치적 계산이 앞선 결정으로 남았다.

권력 말기에 던진 무모한 베팅은 그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었다. 친위적 권력이 유지될 것이라는 판단, 혹은 헌법재판소의 결단이 다른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는 기대는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오판이었다. 정치적 생존 감각이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던 관료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선고한 중형은 단순히 개인의 범죄에 대한 처벌을 넘어선다. 재판부가 지적했듯, 그의 죄는 ‘경력이 많아서’ 가중됐다.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을 간접적으로 부여받은 국무총리였기에, 헌법을 외면한 선택은 더 무겁게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간 받은 훈장과 포장은 면죄부가 아니라, 오히려 책임의 무게를 증명하는 증거가 됐다.

한덕수 전 총리는 마지막까지 “겸허히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몰락은 개인의 불운이나 시대의 희생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권력의 중심에 오래 머무를수록, 중립은 미덕이 아니라 책임이 된다. 가치 없는 처세는 결국 권력의 그늘에 스스로를 묶는 족쇄가 된다. 한덕수의 추락은 그래서 비극이기 이전에 자업자득이다. 엘리트 관료의 성공 신화가 끝나는 지점에서, 한국 정치가 새겨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권력에 대한 충성은 순간을 살릴 수 있어도, 헌법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Copyrightⓒ한국미디어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음기사글이 없습니다.
칼럼) 노후 준비를 위한 스타트
칼럼/사설 기사목록 보기
 
최신 뉴스
칼럼) "한덕수" 전 총리 몰락, 자업자득
속보) 경찰 김경 시의원 추가 금품 제공 의혹 수사..
여야,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2..
단독) 법원 가습기살균제 사태 국가 배상책임 재차 ..
속보) 코스피 장중 사상 첫 5000선 돌파
단독) 2026년 한국미디어일보 최우수상 수상 교육..
대한민국 세계 최초 AI 기본법 전면 시행 인공지능..
중국 암웨이 1만 4000명 대규모 한국행 확정 1..
칼럼) 노후 준비를 위한 스타트
속보) 이재명 대통령 국정 현안 및 대외 관계 기조..
 
최신 인기뉴스
충청권 광역급행철도 CTX 노선 다변화로 사업 가시..
단독) 대통령 직무실 속도전 "세종시 집값 상승세"
단독) 한국미디어일보 2026년 올해의 가전제품 부..
단독)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 직전 <..
단독) 2026년 한국미디어일보 최우수상 수상 교육..
속보) 인천 장수동 교차로 25톤 덤프트럭 7중 연..
김병기 의원 민주당 윤리심판원 제명 결정 수용 및 ..
단독) [최민호 시장의 새벽 3시] 출판기념 북토크..
칼럼) 논란을 넘어 책임으로, 임성근 셰프가 보여준..
속보)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율 58% 기록…상승..
 
신문사 소개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기사제보
 
한국미디어일보 / 등록번호 : 서울,아02928 / 등록일자 : 2013년12월16일 / 제호 : 한국미디어일보 / 발행인 ·  대표 : 백소영, 편집국장 :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편집인 : 백승판  / 발행소(주소) : 서울시 중구 을지로99, 4층 402호 / 전화번호 : 1566-7187   FAX : 02-6499-7187 / 발행일자 : 2013년 12월 16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소영 / (경기도ㆍ인천)지국, (충청ㆍ세종ㆍ대전)지국, (전라도ㆍ광주)지국, (경상도ㆍ부산ㆍ울산)지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지국 / 이명기 전국지국장
copyright(c)2026 한국미디어일보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