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내달 대법관 퇴임을 앞둔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후임으로 천대엽 대법관을 내정했다. 천 대법관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법원행정처장을 맡아 조 대법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온 인물이다. 대법원은 6.3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점임을 고려해 현직인 노 위원장이 대법관 퇴임 후에도 일정 기간 위원장직을 유지하며 선거 관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결정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임명 3인,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 등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 중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대법관이 관례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왔다. 조 대법원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사법부 몫의 선관위원 자리에 자신의 복심으로 꼽히는 천 대법관을 배치하는 강수를 뒀다.
천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 재임 당시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조 대법원장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며 사법 행정 전반을 총괄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대법원장의 직접 답변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1987년 헌법 체제 성립 이후 대법원장이 나와 일문일답을 한 전례가 없다"며 전면에 나서 방어막을 치기도 했다. 당시 천 대법관은 의원들의 공세에도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며 법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즉각 반발 기류가 형성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장의 최측근 인사를 내정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야당 의원들은 이번 인사가 사법부의 독립성과 선거 관리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조 대법원장의 선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러한 논란과 선거 관리의 연속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태악 현 위원장은 당분간 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노 위원장은 대법관 임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사퇴하지 않고 6.3 지방선거가 마무리될 때까지 위원장 업무를 지속할 방침이다. 대법관 퇴임과 동시에 선관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지만, 선거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예외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에도 선거 임박 등을 이유로 퇴임 대법관이 위원장직을 유지한 사례는 존재한다. 지난 2020년 권순일 전 선관위원장은 대법관 퇴임 이후에도 선거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 52일간 위원장직을 수행한 바 있다. 다만 이번 인사는 내정 단계부터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불거진 상태여서 향후 천 대법관의 취임 과정에서 여야의 대립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법원 내부의 혼란도 가중되는 양상이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은 최근 여당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 3법 강행 처리 움직임에 반발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사법부 수뇌부 인사를 둘러싼 외부의 비판과 내부의 사퇴 파동이 겹치면서 대법원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이번 인사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선거 관리 기구의 수장을 교체하는 민감한 사안이다. 천 대법관의 내정과 노 위원장의 한시적 유임 결정이 실제 선거 현장에서 중립성 시비를 잠재울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사가 선관위 내부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를 두고 정치권의 감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