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통과를 확정 지은 한국 야구대표팀의 마운드에서 베테랑 투수들의 활약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호주전에서 42세의 노경은은 선발 투수의 조기 강판이라는 위기 상황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팀의 7-2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는 선발 손주영이 1회 종료 후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급격히 호주 쪽으로 기울 수 있는 흐름이었다. 급박하게 등판한 노경은은 2회 첫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으나 후속 타자를 병살타와 땅볼로 요리하며 실점 없이 이닝을 지웠다. 특히 3회에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 트래비스 바자나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등 상대 핵심 타선을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노경은이 2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버티는 사이 대표팀 타선은 문보경의 홈런 등을 묶어 4점을 먼저 뽑아내며 승기를 잡았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3경기에서 3.1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노경은은 2013년 이후 13년 만에 다시 입은 대표팀 유니폼의 가치를 실력으로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9세 류현진의 합류 역시 대표팀 운영의 핵심축이었다. 16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류현진은 조별리그 최대 분수령이었던 대만전 선발 중책을 맡아 3이닝 1실점으로 제 몫을 했다. 비록 팀은 연장 승부 끝에 패했지만, 류현진은 단 하나의 사사구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제구력을 선보였다. 중압감이 큰 국제대회에서 젊은 투수들이 볼넷으로 무너졌던 이전 대회들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 같은 베테랑들의 활약은 지난해 2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이정후가 피력했던 소신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이정후는 취재진을 향해 대표팀이 경험을 쌓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하며, 젊은 선수들 위주의 구성보다는 위기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의 배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류지현 대표팀 감독은 호주전 직후 노경은의 투구에 대해 존경스럽다는 표현을 쓰며 고마움을 전했다. 마운드의 불안 요소가 지적되던 상황에서 노장들의 관록이 팀의 8강 진출을 견인하는 동력이 된 셈이다. 현장 취재진 사이에서는 국제대회의 중압감을 이겨내는 데 있어 구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투수의 운영 능력과 경험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베테랑 의존도가 높아지는 구조는 향후 대표팀의 장기적인 세대교체 연착륙이라는 과제를 남긴다. 젊은 투수들이 베테랑의 투구 내용을 습득하고 실전에서 이를 재현할 수 있느냐에 따라 한국 야구의 국제 경쟁력 지속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라운드를 통과한 대표팀이 토너먼트 상위 단계에서도 노장들의 경험을 승리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