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구에 대해 국회 동의권 행사를 명분으로 일제히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미국의 파병 압박이 거세지는 국면에서 여야가 헌법적 절차를 내세워 신중론으로 결집하는 양상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전투 개입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규정했다. 송 원내대표는 우리 장병의 안위가 직결된 중대한 사안을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헌법과 법률에 따른 국회의 동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 제60조 2항은 국군을 외국에 파견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할 당시에는 별도의 동의안 처리 없이 행정부의 판단만으로 결정했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다국적군 편성의 일환으로 사실상 참전에 준하는 성격을 띠고 있어 과거와 같은 방식의 작전 구역 확대만으로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점에 힘을 실었다. 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현재를 전쟁 국면으로 진단하며, 국회 동의 절차를 밟는 것이 국익 차원에서 결정을 신중히 하고 전략적 시간을 버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파병 요구 자체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도 잇따랐다. 이기헌 민주당 의원은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동맹국에 대한 예의가 없는 행위로 규정했다. 이 의원은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운 이번 요구가 우리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파병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국혁신당은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 대응론을 내놨다. 김준형 의원은 이번 사안을 지목된 5개국과 공동 대응해 유엔(UN) 안보리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의 합법성 여부를 국제무대에서 따지는 과정을 통해 파병 여부를 신중히 결정하자는 취지다.
정부가 파병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여야가 '국회 동의'라는 공통된 방어막을 형성함에 따라, 향후 파병 논의는 행정부의 판단을 넘어 국회 차원의 찬반 논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미국의 요구 수위와 맞물려 국회가 어떤 조건을 내걸지가 향후 중동 정세 속 한국 대응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