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 이후 처음 실시한 사전심사에서 접수된 26건의 사건을 모두 각하했다. 헌법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는 24일 재판관 평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본안 심리를 담당하는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사건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 결정은 지난 12일 재판소원 제도가 본격 시행된 지 약 2주 만에 나온 첫 판단이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재판소원을 청구하는 이는 헌재법상 청구 사유를 갖췄는지에 대해 진지하고 충실한 주장과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심사 기준을 제시했다.
각하된 26건의 사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사유는 청구 사유 미비로 총 17건이다. 헌재는 청구 사유를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주장하거나, 실질적으로 법원의 사실인정 및 증거 평가 또는 법률 적용의 당부를 다투는 경우를 주요 배제 대상으로 삼았다.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 불복에 불과한 경우도 청구 사유를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했다.
헌법소원 청구 전 다른 구제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하는 보충성 원칙을 어긴 사례는 2건, 판결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해야 하는 청구 기간을 넘긴 사례는 5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납북귀환 어부 유족이 제기해 재판소원 2호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국가배상 소송 판결 취소 청구도 보충성 요건 미비로 문턱을 넘지 못했다.
23일 자정까지 헌재에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은 총 153건이다. 제도 시행 초기 하루 평균 10여 건 이상의 사건이 접수되고 있으며, 헌재 내부에서는 연간 약 1만 건에서 1만 5천 건의 사건이 추가로 쌓일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헌재가 첫 심사부터 전량 각하 결정을 내린 조치는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로 변질되어 소송이 남발되는 상황을 경계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정재판부는 향후 접수되는 사건에 대해서도 적법 요건을 엄격히 따져본 뒤 본안 회부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법조계 내부에선 헌재가 초기에 강력한 선별 기준을 적용해 사법 체계의 혼란을 최소화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재가 명시한 진지하고 충실한 소명 기준이 향후 재판소원 청구 과정에서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번 대규모 각하 결정으로 인해 재판소원 청구 요건의 구체적 범위를 둘러싼 법적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