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의 한 편의점 종량제봉투 판매대는 25일 오후 내내 비어 있었다. 인근 마트 세 곳을 확인한 결과 10리터와 20리터 규격 봉투는 모두 매진됐으며, 일부 점포는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비닐의 주원료인 나프타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하면서 시민들이 사재기에 나선 영향이다.
환경부는 이날 긴급 브리핑을 열고 전국 지자체의 종량제봉투 재고 상황을 발표하며 시장 불안 진화에 나섰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 평균 재고량은 약 3개월분으로 파악됐다. 특히 전체 지자체의 50% 이상이 6개월치 이상의 물량을 비축하고 있어 물리적인 공급 부족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공급망의 핵심인 재생 원료 보유량도 점검 대상에 올랐다. 환경부는 현재 확보된 재생 원료가 재작년 한 해 동안 판매된 전체 종량제봉투 물량을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원료 수급 불안이 실제 제조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지표를 제시하며 과도한 불안감을 경계한 조치다.
현장의 목소리는 정부의 낙관적 전망과 온도 차를 보였다. 경기도 소재의 한 봉투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료사로부터 공급 감축 통보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평소 발주량의 60%에서 70% 수준만 입고되고 있어 공장 가동률을 조정해야 할 처지라며 원료 단가 상승까지 겹쳐 현장 압박이 거세다고 전했다.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는 실제 구매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트를 찾은 한 시민은 주변에서 봉투를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방문했다며 당장 사용할 분량이 남아있음에도 일단 추가로 구매했다고 말했다. 유통 현장에서는 원료 수급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반복되는 전형적인 가수요 현상이 나타나는 양상이다.
정부는 지자체와 합동 상황반을 구성해 종량제봉투 수급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사재기 징후가 뚜렷한 지역에는 비축 물량을 우선 배정하고 유통 경로를 점검할 계획이다. 하지만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원료 가격 변동에 따른 제조 현장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나프타 가격 추이에 따라 제조 원가 압박이 심화될 경우 지자체의 봉투 공급 단가 조정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료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재고 발표만으로는 현장의 품귀 현상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수급 불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지자체별 비축 물량 격차에 따른 지역별 공급 불균형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