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검체검사와 CT·MRI 수가를 조정해 확보한 재원을 지역·필수의료에 투입하겠다고 밝히자 의료계와 소비자단체가 추가 재정 투입을 요구했다. 필수의료 정상화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내부 재배분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고 지원과 구체적인 보상체계 설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17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 수가 구조 혁신 공청회"를 열고 수가 개편안을 공개했다. 개편안에는 검체검사와 CT·MRI 수가 조정, 지역 우대수가 도입, 소아·분만·신생아 진료 지원 강화, 진찰료 인상, 재활의료전달체계 구축을 위한 재활치료 보상 확대 등이 담겼다.
정부는 과보상 논란이 제기돼 온 검사 분야 수가를 조정해 연간 2조원 이상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재원은 중증·응급·소아·분만 등 지역·필수의료 보상 강화에 우선 투입된다. 복지부는 상대가치점수 조정 주기를 줄이고 비용 분석 결과를 반영해 건강보험 보상 체계를 다시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공청회에 참석한 의료계는 정책 방향에는 대체로 공감했다. 저보상 필수의료 분야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같았다. 그러나 검체검사와 영상검사 수가 조정을 통해 확보한 재원만으로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어렵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대한중소병원협회 박진식 부회장은 중증·응급·지역의료 보상 강화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상대가치점수 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산지수 불균형과 비급여 보상체계 개편이 함께 논의돼야 하며, 건강보험 재정 외 별도의 정책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역 병원들은 인력난과 낮은 수익성, 사법 리스크가 겹쳐 단순 수가 조정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내과계는 검사 수가 조정 과정에서 진료 현장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체검사와 영상검사는 단순한 부가 행위가 아니라 진단과 치료 판단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대한내과의사회 조원영 총무이사는 검사 수가 조정이 일선 의료기관의 진료 기능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지원도 특정 의료기관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아·모자의료 지원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만 지원해서는 실제 진료 체계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소아외과, 소아마취과, 신생아중환자실, 응급의료 등 여러 진료과가 함께 움직여야 소아·분만 환자를 끝까지 치료할 수 있다. 지원 대상과 평가 기준을 좁게 잡으면 현장의 연계 진료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을 수 있다.
응급의료 분야에서는 최종치료 역량 중심의 보상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영남대병원 외과 배정민 교수는 응급실 보상만으로는 부족하며 수술실과 중환자실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응급환자를 받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수술과 중환자 치료까지 완결할 수 있어야 지역 응급의료가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단체도 필수의료 강화 필요성에는 동의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김영주 이사는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번 수가 구조 혁신이 필수의료 정상화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건강보험료 인상만으로 부담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 재정 지원 확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는 추가 투자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정민 의료급여과장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과다 보상 영역은 조정하고, 그 재원을 필수의료에 우선 투자하겠다고 설명했다. 상대가치점수뿐 아니라 환산지수, 정책수가, 각종 가산제도를 포함한 최종 보상체계 전반을 개편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국고지원 확대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복지부는 응급·중증·소아·모자의료 분야를 우선 지원 대상으로 두고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이달 말 최종 혁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검사 수가 조정으로 마련한 재원을 어디에,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투입할지가 다음 단계의 핵심이다.
이번 수가 개편은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 과보상과 저보상을 다시 나누는 작업이다. 그러나 지역 병원과 필수 진료과가 겪는 문제는 수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력 확보, 법적 부담, 야간·휴일 진료 체계, 중환자 치료 역량까지 함께 손봐야 한다. 정부가 2조원 재배분을 넘어 국고 투입과 현장형 보상 기준을 어떻게 제시할지가 남은 쟁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