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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전쟁 직후 기름값 급등…정유 4사 담합 혐의 기소

이수민 기자 | 입력 26-07-08 09:41



미국·이란 전쟁 직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한 경위를 둘러싸고 국내 정유 4개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정유사 법인과 임직원을 기소한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도 별도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6일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개사 법인과 임직원 4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임직원 기소 대상에는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 부서장과 책임매니저, 법무실장,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 등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 부서장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후 석유제품 가격이 이례적으로 오른 배경에 일부 정유사의 가격 담합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가격결정부서 책임자들이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합의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제시한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000억 원이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전쟁 직후 공급가격을 올리는 과정에서 가격 정보를 교환하고, SK에너지의 입금가를 HD현대오일뱅크보다 리터당 30~40원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가격 인상 흐름을 맞췄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입금가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우선 통보하는 공급가격이다. 주유소는 입금가를 기준으로 석유제품을 공급받고, 이후 정유사가 확정가를 정하면 사후 정산하는 구조다. 검찰은 입금가 인상이 주유소 판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최종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고 봤다.

검찰은 이번 가격 인상이 단발적 행위가 아니라 기존 정보교환 관행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두 회사가 2024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가격 정책을 정하는 과정에서 입금가 등 가격 정보를 주고받아 왔고, 이 같은 관행이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가격 인상 합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GS칼텍스와 에쓰오일에 대해서는 직접 가격 합의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두 회사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 흐름을 참고해 가격을 올린 것으로 봤지만, 명시적 합의 없이 경쟁사 가격을 의식해 유사하게 움직이는 의식적 병행행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가격담합 자체의 형사처벌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까지 포함할 경우 경쟁제한 효과가 약 26조 원 규모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직접 담합 규모와 경쟁사 가격 추종 효과를 구분한 수치다. 향후 재판에서는 가격 정보 교환의 성격과 실제 가격 결정에 미친 영향, 회사별 관여 정도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유 4사가 자영주유소와 맺어온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도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전량구매계약은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로부터 석유제품 전량을 구매하도록 하는 계약이다. 검찰은 정유사들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영주유소가 더 싼 공급처를 선택하지 못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다른 정유사 제품을 공급받은 주유소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비용 회수, 보너스카드 중단 등 불이익을 준 정황도 문제 삼았다. 가격담합 혐의와 별개로 정유 4사 모두가 불공정거래 관행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이유다.

공정위 현장조사와 관련한 증거인멸 혐의도 제기됐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 법무실장이 공정위 현장조사 정보를 미리 알고 경쟁사 가격 정보가 담긴 자료 삭제를 지시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도 공정위 조사 전 가격 관련 사내 메신저 대화를 삭제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공정위 조사도 별도로 진행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건이 공정위가 먼저 조사에 착수했던 사안이며, 검찰은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검찰 기소와 관련해서는 전속고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검찰의 고발 요청이 있었고, 공정위원장이 고발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정위는 현재 담합 사실관계 조사와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과징금 규모와 제재 수위는 조사가 끝난 뒤 산정될 예정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에는 관련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기준으로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어, 검찰이 제시한 담합 규모가 향후 행정제재 산정의 주요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리니언시 적용 여부도 변수다.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인 리니언시가 인정되면 과징금이 감경되거나 면제될 수 있고, 전속고발 대상 사건의 고발도 면제될 수 있다. 이번 검찰 수사 과정에서 SK에너지와 담당 직원이 가격담합 부분에서 리니언시 적용을 받아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리니언시가 모든 혐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등 자영주유소 대상 불공정거래 관행과 관련해서는 정유 4사 법인을 모두 기소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에서도 가격담합 관련 매출액, 전량구매계약 관련 위반 범위, 회사별 관여 정도, 리니언시 인정 범위가 각각 따로 검토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에쓰오일 등 3개사가 지난 3월 1일부터 5일까지 휘발유 등 일일 판매가를 실제보다 낮춰 산업통상부에 허위 보고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관련 자료를 산업부와 공유하고 정유사 간 가격 통보·모니터링 구조, 전량구매계약 등 제도 개선 논의에도 협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석유최고가격제 손실보전 절차와도 맞물려 있다. 석유최고가격제는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석유가격 변동 폭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3월 13일부터 시행됐다. 적용 대상은 주유소 판매가격이 아니라 정유사의 주유소·대리점 공급가격이다.

정유사들은 향후 재판에서 가격 결정이 국제 유가와 환율, 공급 비용 등 시장 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검찰은 가격 정보 교환과 입금가 조정, 사후정산 구조가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라 형사재판과 별도로 대규모 과징금 부과 여부도 결정된다. 전쟁 직후 기름값 급등이 국제 원유시장 충격 때문인지, 정유사 가격 결정 구조의 문제였는지를 가르는 판단은 이제 법원과 공정위 절차에서 이어지게 됐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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