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의료기관과 환자의 특성에 따라 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일률적인 인력 기준에서 벗어나 환자의 중증도와 근무 부서까지 고려해 간호인력을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제정된 간호법의 첫 번째 개정이다.
국회는 20일 본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간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의료현장의 실제 업무량을 반영해 간호사 1명당 적정 환자 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준을 정할 때는 의료기관 종류와 병상 규모, 진료 특성을 함께 고려하도록 했다. 환자의 특성과 중증도뿐 아니라 간호사의 근무 형태와 근무 부서별 여건도 배치 기준을 결정하는 요소에 포함된다. 같은 규모의 병원이라도 중환자실과 일반병동 등 실제 간호 업무의 강도가 다른 점을 제도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이번 법 통과로 전국 병원의 간호사 1명당 환자 수가 당장 특정 숫자로 통일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배치 기준과 적용 방법은 보건복지부령을 통해 정해진다. 의료기관별 규모와 진료과, 환자 중증도 등 여러 조건을 어떻게 세분화할지가 후속 작업의 핵심이다.
병원이 기준을 실제로 지키도록 유도할 장치도 포함됐다. 의료기관의 적정 배치 기준 준수 여부를 의료기관 평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인력 배치 기준을 선언적인 권고에 그치지 않고 의료기관 평가와 연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수진 의원은 과도한 업무 부담이 간호사의 노동환경뿐 아니라 환자 안전과도 직결돼 있다고 지적해 왔다. 간호사 한 명이 지나치게 많은 환자를 담당하면 환자에게 충분한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고, 누적된 업무 부담이 병원 조직 내부의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이번 개정은 간호법 시행 이후 처음 이뤄지는 법률 개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와 권리·책무, 간호인력 양성과 처우 개선 등을 별도의 법률 체계에서 다루기 위해 제정됐으며 2025년 6월 시행됐다.
대한간호협회는 법안 통과 직후 환영 입장을 냈다. 간협은 간호사 적정 배치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환자 안전을 높이고 열악한 간호사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현장에서는 그동안 간호사 한 명이 맡는 환자 수가 병원과 병동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부서에서 담당 환자가 늘어나면 투약과 처치, 상태 확인, 보호자 대응까지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은 병상 수만을 기준으로 인력을 계산하는 방식에서 실제 간호 업무량을 함께 살피는 쪽으로 기준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법률 통과보다 더 복잡한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상급종합병원과 중소병원의 인력 확보 여건이 다르고 수도권과 지역 의료기관의 간호사 수급 상황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를 낮추려면 추가 인력이 필요한 병원이 생길 수 있고, 이에 따른 인건비와 병원 운영 부담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함께 다뤄야 한다.
간호계 역시 후속 기준 마련을 주시하고 있다. 간협은 의료현장의 준비 상황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법에서 정한 기간 안에 세부 기준을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법 개정으로 "간호사 한 명이 몇 명의 환자를 맡는 것이 적정한가"라는 문제는 병원 내부의 인력 운영 차원을 넘어 법에 근거한 기준 설정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실제 환자 안전과 간호사의 업무 부담을 바꿀 수 있을지는 앞으로 마련될 복지부령에서 병동과 환자 중증도별 기준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설계하고 의료기관이 이를 지킬 수 있는 인력과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박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