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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랑했던 그녀에게… 끝내 하지 못했던 말

이명기논설위원 대기자 | 입력 26-08-29 10:21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잠시 머물다 떠나고,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도 마음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 조금씩 잊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잊으려고 할수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일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이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사랑하는 것은 만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를 잃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이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자리였는지를 깨닫는다는 것을.

함께 있을 때는 평범했던 일들이 지금은 가장 그리운 기억이 되었다.

함께 걸었던 길.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함께 바라보았던 풍경.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했던 순간들.

그때는 몰랐다.

그 평범한 하루가 행복이었다는 것을.

사람은 참 어리석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잊고, 떠나고 나서야 빈자리를 바라본다.

언제든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일이면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하지 못한 말은 내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내일’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가장 많이 떠오르는 말은 하나다.

미안하다.

사랑하면서 왜 그렇게 상처를 주었는지.

사랑하면서 왜 더 따뜻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왜 그 순간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했는지.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그녀의 마음까지 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이제야 보인다.

말은 순간이지만 상처는 오래간다.

화가 나서 던진 한마디가 사랑했던 사람의 가슴에는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녀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울었던 날도 있었을 것이고, 내 말 한마디에 가슴이 무너졌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왜 그때 그것을 보지 못했을까.

왜 내 아픔만 아프다고 생각했을까.

조금 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걸.

조금 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볼 걸.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줄 걸.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더 많이 말해줄 걸.

이별 뒤에 찾아오는 후회는 참 잔인하다.

이미 지나간 장면을 수없이 다시 보여준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그냥 안아줬더라면.’

‘자존심을 버리고 먼저 미안하다고 했더라면.’

그러나 아무리 마음속에서 시간을 되돌려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프다.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미안함도 크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생각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를 잃고 나서야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사랑은 상대를 내 곁에 두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사랑은 그 사람의 마음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고, 그 사람의 아픔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존중해주는 것이 사랑이었다.

예전의 나는 사랑하면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고 싶으면 만나야 하고, 사랑하면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사랑했기 때문에 놓아줘야 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내가 그립다고 해서 그녀가 돌아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후회한다고 해서 그녀가 나를 용서해야 할 의무도 없다.

내가 여전히 사랑한다고 해서 그녀의 삶을 흔들 권리는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 아프지만, 그것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은 돌아와 달라는 글이 아니다.

다시 시작하자는 부탁도 아니다.

그녀의 마음을 흔들기 위한 글도 아니다.

그저 내가 평생 마음속에 묻어두면 후회할 것 같은 말들을 조용히 남기는 것이다.

고마웠다.

내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해줘서.

힘든 순간에 곁에 있어줘서.

함께 웃어줘서.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날로 만들어줘서.

그리고 부족했던 나를 한때 진심으로 사랑해줘서.

나는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끝이 아팠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분명 행복했던 날이 있었다.

서로를 기다렸던 순간도 있었고, 보고 싶어 했던 날도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진짜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지난 시간을 미움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좋았던 시간은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

그리고 내가 잘못했던 것은 평생의 교훈으로 가지고 가고 싶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던 나의 모습은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이 진심으로 미안하다면 말로만 미안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삶이 달라져야 한다.

말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늦은 사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말을 쓰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랑했던 사람이 나 없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마음 한편으로는 참 아픈 일이다.

그 행복 속에 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바란다.

그녀가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 때 혼자 견디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고, 잠들기 전 오늘 하루도 괜찮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주었던 상처보다 우리가 함께 웃었던 시간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왔으면 좋겠다.

나 역시 이제 잘 살아가야 한다.

그녀를 사랑했다면 내가 무너지는 것이 사랑의 증명은 아닐 것이다.

그녀 때문에 평생 불행하게 살아가는 것도 사랑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같은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사람은 지나간 사랑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굳이 잊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잊는 것만이 이별의 완성은 아니다.

생각나도 괜찮고, 가끔 그리워해도 괜찮다.

다만 그 그리움 때문에 상대의 삶을 붙잡지 않는 것.

좋았던 기억은 가슴에 간직하면서도 서로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어른의 이별인지도 모른다.

가끔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지난날의 우리를 바라보면 마음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저 순간이 언젠가 이렇게 그리운 기억이 될 줄을.

그때 조금 더 바라볼 걸.

조금 더 웃어줄 걸.

조금 더 사랑한다고 말할 걸.

하지만 인생에는 되돌릴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그래서 남은 사람은 그 장면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부족해서 힘들게 했던 순간들,

상처가 되는 말을 했던 순간들,

그녀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 미안함에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겠다고.

용서해 달라고 강요하지 않겠다.

다시 돌아와 달라고 요구하지 않겠다.

다만 언젠가 아주 먼 훗날,

그녀가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나를 온전히 미워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한때는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었지.’

그 정도로 기억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녀야.

어디에 있든 건강했으면 좋겠다.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마음 아픈 일이 생기면 혼자 참지 말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좋은 곳도 많이 다니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이 보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 행복의 이유가 아니어도 괜찮다.


이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이제는 할 수 있다.

사랑했던 사람이 행복한 것이 결국 내가 바라는 마지막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반드시 함께 있어야만 사랑인 것은 아닌가 보다.

어떤 사랑은 함께 걷고,

어떤 사랑은 멀리서 바라보고,

어떤 사랑은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간다.

하지만 형태가 달라졌다고 해서 그때의 진심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내 삶에 있었던 시간은 분명 따뜻했고 소중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아팠던 시간 역시 결국 내 인생의 일부가 될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우리가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연히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더라도 더 이상 눈물이 먼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용히 미소 지으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참 많이 사랑했었구나.”

그것이면 된다.

그녀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거창하지 않다.

고마웠다.

미안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내게는 소중했다.

내가 주었던 상처는 오래도록 미안하게 기억하겠다.

그리고 좋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고맙게 간직하겠다.

이제는 그녀의 삶을 존중한다.

그녀가 선택한 길을 존중한다.

그리고 멀리서나마 그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것이 이렇게 아픈 일인지 예전에는 몰랐다.

그러나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진짜 사랑은 때로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대를 소중하게 기억하지만, 그대의 행복을 위해 내 마음은 내가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삶을 살아가겠다.

그녀와 함께했던 좋은 시간에 부끄럽지 않도록,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살아가겠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사랑이며,

늦었지만 가장 진실한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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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기 대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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