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노래와 춤으로 대중을 만났던 가수들이 스크린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가수 활동으로 이름을 알린 뒤 연기에 도전해 천만 영화에 출연하거나 흥행작의 중심에 선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정현이다. 1996년 영화 "꽃잎"으로 먼저 연기를 시작한 뒤 "와", "바꿔" 등으로 가요계를 휩쓸었던 이정현은 이후 배우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정현이 출연한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작품은 2014년 개봉한 "명량"이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누적 관객은 약 1761만명으로 역대 한국 영화 최고 수준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정현은 극 중 말을 하지 못하는 인물 정씨 여인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가수에서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힌 박지훈도 대형 흥행작의 주연 배우가 됐다. 그룹 워너원 출신인 박지훈은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 등을 통해 배우로 입지를 넓힌 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역을 맡았다.
2026년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누적 관객 1600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흥행 2위까지 올라섰다. 1761만여명을 기록한 "명량"에 이어 역대 국내 개봉작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됐다.
엑소 멤버 도경수도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며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도경수는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에서 관심병사 원동연 역을 맡았다. 작품은 약 1441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엄정화는 가요계와 영화계 양쪽에서 정상급 경력을 쌓은 대표적인 사례다. "초대", "포이즌", "페스티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한 동시에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 배우로 활동했다.
엄정화가 출연한 2009년 영화 "해운대"는 약 114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후 "댄싱퀸", "오케이 마담" 등에서도 주연을 맡으며 가수와 배우 활동을 이어왔다.
그룹 제국의아이들 출신 임시완은 배우 전향에 성공한 대표적인 아이돌 출신 연기자로 꼽힌다. 영화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 진우 역을 맡았고 작품은 약 113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후 드라마 "미생",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비상선언" 등에서 연이어 주연을 맡으면서 배우로 활동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소녀시대 윤아도 스크린에서 흥행 성적을 냈다. 2019년 조정석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엑시트"는 약 94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천만 관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해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흥행작 가운데 하나가 됐다.
가수 수지는 영화 "백두산"으로 대형 상업영화 흥행작에 이름을 올렸다. 2019년 개봉한 "백두산"은 약 825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수지는 이에 앞서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배우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그룹 god 출신 윤계상은 영화 "범죄도시"에서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었다. 윤계상은 범죄조직 두목 장첸을 연기했고 "범죄도시"는 약 68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장첸은 윤계상의 배우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후 "범죄도시"는 속편들이 잇따라 제작되면서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범죄 액션 시리즈로 성장했다.
2PM 이준호도 가수 활동과 연기를 병행해왔다. 영화 "감시자들"에 출연해 스크린 경험을 쌓았으며 작품은 약 5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후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킹더랜드" 등을 통해 주연 배우로 자리 잡았다.
빅뱅 출신 최승현도 영화 흥행작에 출연했다. 2014년 개봉한 "타짜-신의 손"에서 함대길 역을 맡았으며 작품은 약 401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다만 이들을 단순히 "가수 출신 배우"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묶을 때는 경력의 출발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정현처럼 배우로 먼저 데뷔한 뒤 가수로 크게 성공한 경우도 있고, 엄정화처럼 가수와 배우 활동을 오랜 기간 동시에 이어온 사례도 있다. 박지훈 역시 아역 연기 경험을 거친 뒤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했다.
또 영화의 전체 관객 수를 특정 배우 한 사람의 흥행 성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감독과 각본, 함께 출연한 배우, 배급 규모와 개봉 시기 등 여러 요소가 영화 흥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무대와 스크린 사이의 경계가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가수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뒤 연기에 도전하는 단계를 넘어, 천만 영화의 주요 배역과 장기 흥행 시리즈를 맡는 배우들이 나오고 있다. 이정현의 "명량", 박지훈의 "왕과 사는 남자", 도경수의 "신과함께-죄와 벌"처럼 가수 활동 경력을 가진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도 한국 영화 흥행 기록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