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지천명", "이순", "고희"처럼 우리말에는 숫자 대신 특정한 말로 나이를 표현하는 전통이 있다. 단순히 몇 살인지를 나타내는 것을 넘어 학문을 시작하고 삶의 기반을 세우며 장수를 기리는 의미까지 사람의 생애를 언어에 담았다.
대표적인 표현인 "지학"은 15세를 뜻한다. "학문에 뜻을 둔다"는 의미로 공자의 말을 기록한 "논어"에서 유래했다. 공자가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말한 데서 15세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16세 여성에게 사용했던 "과년"은 전통사회에서 혼인할 나이가 됐다는 의미로 쓰였다. 오늘날의 결혼 연령이나 사회적 인식과는 차이가 큰 만큼 현대의 특정 연령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라기보다 당시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세를 전후해서는 남녀를 달리 부르는 표현도 있었다. 남성의 20세를 가리키는 "약관"은 성인이 되는 관례를 치르고 갓을 쓰던 전통과 연결된다.
젊은 여성을 표현할 때는 "방년"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다만 방년은 반드시 20세 한 나이만을 의미하는 말이라기보다 젊은 여성이 한창 아름다운 나이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폭넓게 사용돼 왔다.
30세는 "이립"이다. 공자가 서른에 자신의 기반을 세웠다는 "삼십이립"에서 나온 말이다. 학문과 삶의 중심을 세우는 시기를 의미한다.
40세를 가리키는 "불혹" 역시 같은 구절에서 유래했다. 세상일에 쉽게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도 마흔을 표현할 때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전통적인 나이 호칭 가운데 하나다.
50세는 "지천명"이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60세는 "이순"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지학부터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까지는 공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이에 따른 학문과 정신의 변화를 설명한 데서 비롯됐다.
60세를 넘어서면 장수를 기념하는 표현이 많아진다.
61세의 "환갑"은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아 태어난 해의 간지가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다. 회갑이라고도 부른다. 전통적인 세는나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표현이어서 현대의 만 나이와는 계산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62세는 "진갑"이라 한다. 환갑을 지나 새로운 갑자로 한 해 더 나아갔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70세를 뜻하는 대표적인 말은 "고희"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가 남긴 "인생칠십고래희"라는 시구에서 유래했다. 예부터 사람이 일흔까지 사는 일이 드물었다는 뜻에서 장수를 축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됐다.
70세는 "종심"이라고도 한다. 공자가 일흔에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71세에는 여든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팔"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77세는 "희수"다. 한자 "희(喜)"의 글자 모양을 숫자 77과 연결해 만든 장수 호칭이다.
80세는 흔히 "팔순"이라고 부른다. "산수"라는 별칭도 전해진다. 우산을 뜻하는 한자 "산(傘)"의 약자를 숫자 80과 연결해 풀이한 표현이다.
81세는 "망구"라고 한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의미다.
88세의 "미수" 역시 한자의 모양에서 만들어졌다. 쌀을 뜻하는 "미(米)"자를 풀어 보면 "八十八"로 해석할 수 있다는 데서 88세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90세는 일반적으로 "구순"이라고 한다. "졸수"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91세에는 100세를 바라본다는 뜻의 "망백"이라는 호칭이 전해진다.
99세를 가리키는 "백수"는 한자의 파자 원리를 이용한 표현이다. 100을 뜻하는 "백(百)"에서 하나를 의미하는 "일(一)"을 빼면 흰 백 "백(白)"이 남는다는 데서 99세를 "백수(白壽)"라고 불렀다.
100세는 "상수"라고 부른다. 장수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돼 왔다.
이 같은 전통적인 나이 호칭을 오늘날의 만 나이와 그대로 대응시키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표현이 만들어진 시대의 나이 계산 방식이 현재와 달랐고 문헌이나 지역, 관습에 따라 같은 나이에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약관", "방년", "과년"처럼 당시의 성별 역할이나 혼인 관습이 반영된 표현도 있다.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사용됐지만 사회적 환경이 달라진 현재에는 역사적 배경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숫자로만 보면 한 살씩 늘어나는 같은 시간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15세에는 학문에 뜻을 두는 "지학", 30세에는 삶의 기반을 세우는 "이립", 40세에는 흔들리지 않는 "불혹", 50세에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60세를 넘어서는 환갑과 고희, 희수, 미수, 백수에는 오래 살아온 시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았다.
오늘날에는 대부분 주민등록상의 만 나이로 연령을 표시하지만 불혹과 지천명, 환갑과 고희 같은 말은 여전히 일상에서 사용된다. 세월을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의 단계로 바라봤던 옛사람들의 생각이 우리말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