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투자소득 과세를 다시 유예할 것을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가상자산 과세를 위한 제도적 기반과 행정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여당 지도부가 유예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정부와 국회의 세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상자산 소득 과세 유예를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당정 협의와 가상자산 사업자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과세 유예 여부를 검토해 왔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과세 원칙, 국내 산업 여건, 이용자 간 형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우선 디지털 자산기본법을 제정해서 전체적인 틀을 세우고, 기업과 투자자들의 적응 기간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투자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기 전에 관련 산업의 법적 체계와 거래정보 검증 시스템을 먼저 정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 대표는 과거에도 가상자산 과세가 여러 차례 연기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번에는 유예 기간을 명확하게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는 유예 기간을 분명하게 정하고, 해외 거래 정보 활용과 전산 검증, 납세 안내 방식 등 선행 과제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신규 서비스 투자와 이용자의 안정적인 거래 환경을 위해 관련 법률과 세제 정비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번 제안은 전날 민주당 소속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들이 과세 유예를 당 지도부에 건의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재경위 여당 간사인 오기형 의원은 3일 가상자산 과세를 일정 기간 더 준비한 뒤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당 지도부에 전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오기 의원은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해야 한다는 조세 기본 원칙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이야기한다"면서도 대외 환경과 정책 여건을 고려할 때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가상자산 소득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세 시점과 실제 집행을 위한 준비 수준을 놓고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소득세법상 가상자산 양도·대여로 발생한 소득에 대한 과세는 2027년 1월 1일 시행될 예정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당초 2022년 시행을 목표로 도입됐지만 관련 제도 정비와 투자자 보호, 과세 인프라 구축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연기됐다.
현행 제도는 가상자산 투자로 발생한 연간 소득에서 기본공제 250만 원을 제외한 금액에 소득세 20%를 부과하는 구조다.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하면 적용 세율은 22%다.
예를 들어 가상자산 거래로 한 해 1천만 원의 과세 대상 소득이 발생했다면 기본공제 250만 원을 제외한 750만 원에 세율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다만 실제 과세소득은 단순 매도금액이 아니라 취득가액과 관련 비용 등을 반영해 계산하며, 구체적인 납세액은 거래 내역과 법령상 계산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유예 논의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해외 거래소를 이용한 가상자산 거래정보의 확보와 검증이다.
국내 거래소를 통한 거래는 사업자가 보유한 거래자료를 활용할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나 개인 간 이전 거래 등은 취득가액과 매매 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이 복잡할 수 있다.
동일한 가상자산을 여러 거래소와 개인 지갑으로 이동시키는 경우에도 실제 취득가격과 거래 손익을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과세당국이 거래정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납세자가 신고한 자료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가상자산 이용자 사이의 과세 형평성도 문제다. 국내 거래소 이용자와 해외 거래소 이용자에게 사실상 동일한 기준으로 과세할 수 있는지, 거래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어떤 방식으로 세액을 산정할지가 쟁점으로 남아 있다.
김 대표가 디지털 자산기본법 제정을 과세에 앞선 과제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제도적 공백과 관련이 있다.
디지털 자산기본법은 가상자산 산업의 법적 체계와 사업자 규율, 시장질서 등을 다루기 위한 입법 과제로 논의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관련 법률이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후속 입법에서는 산업 전반의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는 문제가 다뤄진다.
다만 디지털 자산기본법의 제정 여부와 가상자산 소득세 시행 시점은 법적으로 별개의 문제다. 과세를 연기하려면 소득세법상 시행 시기를 변경하는 입법 절차가 필요하다.
여당 대표의 공식 제안만으로 내년 1월 과세가 자동 연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유예 방안을 수용할지, 국회에서 어떤 기간을 정해 법률을 개정할지에 따라 최종 시행 시점이 결정된다.
특히 이번에는 과세 유예를 반복해 온 기존 방식과 달리 유예 기간을 명확히 설정하고 선행 과제를 준비하겠다는 점을 여당이 내세웠다.
그러나 구체적인 유예 기간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해외 거래정보 확보와 전산 검증 체계 구축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향후 당정 협의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다.
과세 유예가 현실화하면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세금 부담을 일정 기간 미루게 된다.
반면 금융투자 등 다른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과의 과세 형평성 문제는 계속 제기될 수 있다. 소득이 발생하면 세금을 부과한다는 조세 원칙과 신산업의 제도적 준비 필요성 사이에서 기준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앞으로 결정해야 할 사항은 과세 유예 여부뿐 아니라 실제 시행이 가능한 세부 일정이다.
2027년 1월 과세 시행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유예를 요청하면서 정부의 수용 여부와 국회의 세법 개정 절차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박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