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며 집권 이후 처음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굳건한 북·중·러 3각 연대를 전 세계에 과시, 이번 행사의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3일 오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의 바로 왼편이라는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했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오른편에 서면서, 세 정상은 톈안먼 망루의 중앙에서 함께 열병식을 참관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는 탈냉전 이후 북·중·러 세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밀착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첫 장면으로, 서방 중심의 국제질서에 맞서는 공동전선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장면으로 기록됐다.
중국 측의 의전은 파격적이었다. 김 위원장의 전용 열차가 국경 도시인 단둥을 통과할 때부터 베이징역에 도착하기까지 철통 같은 보안과 각별한 예우를 제공했다. 베이징역에는 중국 권력 서열 5위의 고위급 인사가 직접 마중 나와 김 위원장을 영접했으며, 역 주변과 숙소로 향하는 도로 전체를 통제하는 등 국빈급 대우를 아끼지 않았다. 이는 최근 다소 소원했던 북중 관계가 완전히 복원되었음을 넘어, 전략적 협력 관계로 격상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행사 내내 연출된 세 정상의 모습은 단순한 군사력 과시 이상의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졌다. 기념 촬영과 톈안먼 망루 입장 시에도 김 위원장은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함께 선두 그룹을 형성해 이동했으며, 다른 국가 정상들이 그 뒤를 따랐다. 중국 관영 CCTV 역시 생중계 내내 세 정상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이들의 특별한 관계를 부각했다.
이러한 장면은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북한이라는 전략적 카드의 가치를 극대화하며 '반미 연대'의 외연을 확장하는 효과를 얻었다. 미국과의 협상 국면에서 중국의 든든한 지원을 확보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이번 행사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자신의 '몸값'이 달라졌음을 입증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적 고립을 타개하고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중과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다자외교 무대 데뷔를 통해 상당한 정치적 실리를 챙겼다고 분석한다. 과거 제한적인 양자회담의 틀에서 벗어나, 강대국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대내적으로는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높이고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외교적 고립 탈피를 가시화했다는 평가다. 미중 갈등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변동 속에서 전략적 자산을 바탕으로 자신의 입지를 극적으로 끌어올린 김 위원장의 외교적 행보가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