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행정망을 마비시킨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의 원인이 사용 연한을 넘겨 교체 권고까지 받았던 노후 배터리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번 사태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기 안전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로 명백한 위험 요인을 방치한 사실이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은 29일 행정안전부를 통해 "화재 원인이 된 리튬이온 배터리가 지난해와 올해 정기 검사에서 모두 정상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작년 6월 정기 검사 당시, 사용 연한 10년이 경과함에 따라 교체 권고를 받은 것이 맞다"고 공식 인정했다. 사실상 교체 필요성을 인지하고도 1년 넘게 위험을 방치한 셈이다.
국정자원 측은 교체 권고에도 불구하고 해당 배터리를 계속 사용한 이유에 대해 "정기 검사에서 기술적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는 현행 안전 점검 시스템이 부품의 노후화와 같은 잠재적 위험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구조적 허점을 안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국정자원은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배터리 교체 작업이 아닌, 시스템과 이격시키기 위해 지하로 이동시키는 작업 중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정정했다. 하지만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 노후 배터리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에 드러난 사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한 '원점 재조사'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명확한 교체 권고가 있었음에도 예산이나 행정 편의 등의 이유로 이를 묵살한 것은 아닌지, '정상' 판정만을 내세운 안전 점검 체계 자체에 문제는 없었는지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불가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