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2.50% 수준에서 또다시 동결하며, 세 번 연속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오늘(23일) 오전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만장일치 결정했다. 이는 여전히 2% 목표치를 상회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와, 경기 둔화 및 가계부채 부담이라는 상충된 위험 요인 사이에서 고심한 결과로 풀이된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시장의 예상과 대체로 부합하는 결과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보이고는 있으나, 3%대를 기록하며 여전히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2.0%)를 웃돌고 있어 금리 인하를 논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하지만 동시에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 등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고, 1,9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이 임계치에 달했다는 점도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번 동결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물가 둔화세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그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고 향후 불확실성도 크다는 점이 꼽힌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국제유가 변동성과 농산물 가격 불안 등은 언제든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다. 이에 금통위는 섣불리 금리 인하 신호를 주기보다는, 현재의 긴축적인 금리 수준을 당분간 유지하며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확실히 수렴하는지 확인하겠다는 "관망" 자세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방향 역시 이번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연준이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기조를 유지하며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출 것을 시사하는 가운데,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릴 경우 한미 간 금리 격차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원화 가치 하락과 외국인 자금 유출 압력을 높여 수입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은으로서는 미국의 정책 변화를 지켜보며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현재의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혀, 연내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과도한 기대를 차단했다. 다만,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향후 3개월 내 금리를 2.75%까지 올릴 가능성을 열어둬, 물가 불안이 재연될 경우 추가 인상 카드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음을 시사했다. 결국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최우선 과제를 확인하면서도, 경기 침체와 금융 불안의 '살얼음판' 위에서 당분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