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하여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명현 특별검사)에 피의자 신분으로 처음 출석하며 의혹의 '정점'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됐다. 특검팀 출범 이후 133일 만에 이루어진 이번 조사는 윤 전 대통령을 상대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범인도피 등 핵심 혐의에 대한 사실관계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은 11일 오전 9시 47분경 법무부 호송차를 타고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 도착했다. 특검팀은 현장 안전 및 변호인단의 요청을 고려하여 윤 전 대통령의 출석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했으며, 호송차는 건물 지하주차장을 통해 곧바로 조사실로 이동했다. 윤 전 대통령은 앞서 특검팀의 두 차례 소환 통보에 불응했으나, 세 번째 소환 요구에 응하며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번 조사의 핵심은 2023년 7월 31일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초동 수사 결과를 대통령실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른바 ‘VIP 격노’ 의혹이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당시 보고를 받고 격노하며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도록 수사 외압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다. 이는 수사 외압 의혹의 시발점으로 지목되는 지점이다.
구체적으로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격노 이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하여 수사 결과 결재를 번복하도록 지시했는지, 경북경찰청으로 이첩되었던 수사 기록을 회수하고 혐의자를 축소하는 과정 전반에 개입했는지 등을 조사한다. 특히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을 항명죄로 수사하고 기소하기까지의 전 과정에 윤 전 대통령의 관여가 있었는지 여부 역시 직권남용 혐의의 핵심 조사 대상이다.
또한 윤 전 대통령은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선상에 올라 있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2023년 말 주호주 대사로 임명하여 출국을 돕고 수사를 회피하게 했다는 범인도피 혐의도 받고 있다. 특검팀은 이날 조사에서 수사 외압 의혹을 먼저 집중적으로 조사한 뒤, 이 전 장관의 해외 도피 의혹에 대한 조사로 이어갈 계획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그동안 "수사 외압은 없었으며, 이 전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은 도피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팀은 지난 4개월여간의 수사를 통해 ‘VIP 격노설’을 사실로 확정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다수의 진술과 통신 기록 등 정황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대통령실 및 국방부 등 관계자들로부터 보고받고 지시한 사항이 무엇인지 상세히 확인할 예정이다. 특검팀은 조사 내용이 방대하여 추가 소환이 필요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단 한 번의 조사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추가 조사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수사 기한이 오는 28일로 임박한 만큼,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기소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