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언제나 경제의 체온계다. 오를 때는 과열을, 내릴 때는 침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멈출 때는 대개 고민이 깊다는 신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다섯 차례 연속 동결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정책 유지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매우 불편한 균형 위에 올라서 있음을 보여준다. 인하도, 인상도 쉽지 않은 국면. 그 자체로 이미 거시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경고음에 가깝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유지했다. 숫자만 보면 변화가 없는 결정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다. 그동안 남아 있던 금리 인하 기대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번 동결은 통화정책 기조의 분기점으로 해석된다. 특히 의결문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암시하던 표현이 삭제되면서, 완화 사이클 종료를 공식화한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결정의 중심에는 환율이 있다. 고환율은 지금 한국 경제의 가장 예민한 약점이다. 기준금리를 내리는 순간 원화 약세 압력은 더욱 커지고, 외환시장의 불안은 증폭된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자본 이동과 금융 신뢰, 국가 신용도를 동시에 건드리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환율 상승의 책임을 국내 정책으로만 돌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달러화의 구조적 강세, 엔화 약세,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치며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된 결과다. 그럼에도 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외부 요인”이라는 설명만으로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환율이 높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금리 인하는 봉쇄되고 있다.
그렇다고 금리 인상을 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가계부채와 기업 자금 사정은 이미 팽팽하다. 이자 부담이 추가로 늘어날 경우 소비와 투자는 동시에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를 올리는 선택은, 실물경제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한국은행이 동결이라는 중간지대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딜레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의 반응은 다소 역설적이다. 긴축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강세를 보였다. 이는 금리 정책보다 글로벌 불확실성 완화, 기업 실적 기대, 외국인 자금 유입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금융시장은 중앙은행보다 한발 앞서 “금리보다 구조”를 보고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실물경제다. 고환율과 고금리가 동시에 지속되는 환경은 기업과 가계 모두에게 비용 압박으로 작용한다. 수입 물가는 오르고, 차입 비용은 줄지 않는다. 이는 곧 소비 여력 축소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금리 인하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적응’이라는 단어뿐이다.
다섯 번의 연속 동결은 안정의 상징이 아니라 경고의 누적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방향을 잃은 채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환율이 진정되지 않는 한, 한국은행의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금리가 멈춰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숨은 망설임이다. 그리고 그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거시경제의 신호등은 점점 더 붉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