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은 25일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임시 전국법원장회의 서두에서 국회가 추진 중인 사법개혁 3법이 헌법질서와 국민 권리 수호라는 법원의 본질적 역할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회의는 법 왜곡죄 도입, 재판소원제 실시,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한 개정안들에 대해 각급 법원장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긴급 소집됐다.
회의에는 대법원을 제외한 전국 각급 법원장들과 법원행정처장, 사법연수원장, 사법정책연구원장 등 사법부 최고위 법관들이 전원 참석했다. 매년 12월 열리는 정기회의와 달리 특정 현안을 두고 임시회의가 열린 것은 이례적인 조치로 풀이된다. 법원장들은 회의 시작 전부터 배포된 자료를 검토하며 개정안의 위헌성 여부와 재판 현장에 미칠 파장을 집중 점검했다.
법원장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법개혁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정기회의 당시에도 법원장들은 법 왜곡죄 등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크며 위헌성이 다분하다는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소집된 임시회의에서도 사법개혁은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됐다.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이달 들어 두 차례나 공개 석상에서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지난 12일 출근길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조 대법원장은 재판소원과 대법관 증원 문제는 결국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가 돌아가는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틀 전에는 해당 법안들이 80년 가까이 유지된 사법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며 헌법 개정 사항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날 회의는 약 3시간 동안 비공개로 이어졌다. 법원 내부에서는 국회의 입법 속도에 대응해 법원 차원의 공식 입장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장 주변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판결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판사들의 우려 섞인 반응이 감지되기도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회의 결과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법치주의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법원장들의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정치권이 입법 절차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사법부와의 정면충돌 양상은 격화되는 흐름이다. 법원이 입법부의 권한 행사에 대해 헌법적 가치를 근거로 저지 의사를 명확히 함에 따라 향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거센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법 왜곡죄의 구성 요건과 재판소원의 범위 설정을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사법부의 집단 대응 수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번 회의에서 수렴된 법원장들의 의견이 국회의 입법 과정에 어느 정도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법원행정처는 회의 내용을 정리해 국회에 공식 의견서 형태로 전달할 방침이지만 여야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어 사법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 독립과 입법권 행사의 경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를 두고 법조계 안팎의 논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