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의 총파업 예고에 대해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며 생산 공백 차단에 나섰다. 동시에 인공지능(AI) 시장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차세대 제품 공급을 본격적으로 늘려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박순철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30일 열린 1분기 실적 기업설명회(IR)에서 노조의 집단행동 가능성과 관련한 회사의 공식 입장을 내놨다. 박 부사장은 "파업이 실제 벌어지더라도 전담 조직과 대응 체계를 가동해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법한 범위 내에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노조와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는 "대화를 최우선으로 하여 원만히 해결하되 법과 절차에 따라 성실히 임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노사 갈등이 실적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질문이 쏟아졌다. 현재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영업이익의 15%를 상한선 없이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음 달 21일부터 6월 7일까지 보름 넘게 이어지는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생산 라인 가동 유지를 위한 인력 배치 시나리오를 점검하며 노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사업 부문별 세부 전략 발표에서는 메모리 반도체의 질적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드러났다. 삼성전자는 올해 HBM 매출 규모가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커질 것이라고 공식화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 부문 부사장은 "올해 HBM 생산능력(CAPA)은 이미 고객사 물량 확보로 인해 솔드아웃(완판)된 상태"라고 강조했다.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하반기부터는 수익성이 높은 차세대 제품 공급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지난 2월 양산을 시작한 HBM4(6세대) 제품은 현재 계획된 일정에 맞춰 증산 단계에 진입했다. 삼성전자는 3분기부터 HBM4 매출이 전체 HBM 매출의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연간 기준으로도 과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는 계산이다. 김 부사장은 "물량 부족을 우려한 고객사들이 벌써 내년치 수요까지 선점하려 움직이고 있다"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공급 부족 현상이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번 실적 발표와 노사 대응 방침 공개는 삼성전자가 직면한 내부 갈등과 외부 기회 요인을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전례 없는 장기 파업 예고가 현실화될 경우 자동화율이 높은 반도체 공정 특성상 당장 치명적인 타격은 피할 수 있으나, 관리 인력 투입 등 운영 효율 저하는 불가피하다. 공급망 안정성을 강조해 온 고객사들과의 신뢰 관계 유지가 노사 협상의 향방에 달려 있다.
삼성전자는 파업 예고 기간인 5월 말 이전에 노조와 추가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나, 성과급 산정 기준을 둘러싼 양측의 시각 차가 워낙 커 합의점 도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역대급 수주 실적을 기록 중인 HBM 사업의 상승세를 노사 리스크가 가로막을지 여부가 향후 삼성전자 실적 가시성의 최대 변수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