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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주주의의 마지막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우원식 의장이 남긴 2년의 기록과 대한민국 정치의 숙제

이명기 논설위원(대기자) | 입력 26-05-29 10:02



대한민국 정치는 늘 시끄럽다.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비난하며, 누군가는 권력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가장 소란스러운 순간보다,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누가 민주주의를 지켜냈는지를 기억한다.
퇴임을 하루 앞둔 우원식 국회의장의 마지막 기자회견은 그래서 더욱 묵직했다.
그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고, 화려한 수사도 없었다.

하지만 담담하게 이어진 말들 속에는 지난 2년간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 의장은 임기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일로 “12·3 비상계엄 해제”를 꼽았다.
짧은 표현이지만, 그 안에는 민주주의의 숨이 멎을 뻔했던 순간과 이를 막아내기 위해 국회가 감당해야 했던 무게가 담겨 있다.

그날의 대한민국은 평범하지 않았다.
헌정질서는 흔들렸고, 국민들은 불안했고, 정치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거리에는 분노와 갈등이 넘쳐났고,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목격해야 했다.
그 순간 국회는 단순한 입법기관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마지막으로 기대어야 했던 최후의 보루였다.
우 의장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회가 헌정 질서 회복을 주도했고 대내외적으로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단순한 자평이 아니다.
오랜 시간 정치 불신 속에 살아온 국민들에게, 그래도 국회가 마지막 순간만큼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안도감의 기록이었다.

사실 지난 2년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운 시간 중 하나였다.
계엄 해제 이후 이어진 조기 대선 정국, 끝없는 정쟁, 헌법 해석 충돌, 권력기관 간 대립….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우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례 없는 상황이 많다 보니 헌법 해석의 공백에 부닥칠 때마다 치열한 판단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는 국회의장이라는 자리가 단순한 의전직이 아니라는 현실이 담겨 있다.

국회의장은 때로 정치인이어야 하지만, 때로는 헌법기관이어야 한다.
정당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 시스템 전체를 바라봐야 하고, 어느 한쪽의 환호보다 민주주의의 균형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탄핵 당시였다.
당시 정치권은 탄핵 정족수를 두고 거세게 충돌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대통령 기준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국무총리 기준으로 봐야 하는가.

헌법은 명확하게 적혀 있지 않았고, 그 공백은 곧 정치적 혼란이 되었다.
그 순간 우 의장은 “직무를 탄핵하는 것이 아니라 직위를 탄핵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으며 일반 의결 정족수인 151석 기준을 적용했다.
누군가는 그 판단을 비판했고, 누군가는 옹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헌법재판소 판단 과정 속에서 그의 결정은 큰 틀에서 헌정질서의 흐름과 어긋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우 의장은 이를 두고 “대체로 틀리지 않은 판단이었다는 것이 이후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자부심보다 안도의 감정이 더 짙게 묻어 있었다.
사실 민주주의는 거대한 영웅이 지키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 누군가가 흔들리지 않고 제도의 중심을 붙들고 있을 때 비로소 유지된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수많은 민주주의의 상처를 지나왔다.
군홧발 아래 짓눌린 시대도 있었고, 거리의 함성과 희생으로 다시 헌법을 세워 올린 시간도 있었다.

그래서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행정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오래된 공포이자 민주주의의 경고음 같은 것이다.
우 의장이 “비상계엄 해제”를 가장 큰 성과로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단순히 하나의 정치적 결정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막아낸 순간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가장 큰 아쉬움으로 “개헌”을 이야기했다.
“불법 비상계엄을 국회가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하는 개헌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그 말은 단순한 미완의 과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한계를 고백하는 말에 가까웠다.
대한민국은 수십 년 동안 개헌 필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정치권은 늘 이해관계 앞에서 멈춰 섰고, 개헌은 매번 다음 정권의 숙제로 미뤄졌다.


우 의장은 “후반기 국회에서 반드시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결실을 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퇴임을 앞둔 정치인의 아쉬움과 동시에 마지막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고쳐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퇴임 후 정치 행보에 대해서도 그는 말을 아꼈다.
국무총리 차출설에는 사실상 선을 그었지만, 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 여부에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

그 한 문장은 정치인의 계산된 발언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노동·민생 현장을 지켜온 정치인의 진심처럼 들렸다.
권력은 언젠가 끝난다.

국회의장 자리도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한 사람이 남긴 선택과 태도는 시간이 지나도 정치의 기록으로 남는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도 정치에 지쳐 있다.

끝없는 대립과 막말, 진영논리에 실망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그런 시대일수록 국민은 더 절실하게 묻는다.
“그래서 누가 민주주의를 지켰는가.”
우원식 의장의 2년은 완벽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비판도 있었고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헌정질서가 흔들리던 순간, 국회가 민주주의의 마지막 문을 닫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는 떠나며 마지막 숙제를 남겼다.

개헌.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일.
권력이 헌법 위에 서지 못하게 만드는 일.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제도로 지켜내는 일.
그 숙제는 이제 후반기 국회와 정치권 전체의 몫이 됐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끝까지 그 문 앞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22대 국회 전반기, 그 문 앞에 서 있었던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우원식 의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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