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32명에게 5년 동안 4700여 차례에 걸쳐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를 받는 의사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 의료용 마약 전문수사팀은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에서 피부시술 의원을 운영한 50대 여성 의사 A씨를 마약류관리법 및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고 31일 밝혔다. A씨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11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프로포폴 중독자 32명을 상대로 총 18만㎖의 프로포폴을 4700여 회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투약 과정에서는 환자 본인 명의가 아닌 가족과 지인, 환자와 직접 관련이 없는 외국인 명의까지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를 활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환자들에게 "가족이나 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오면 프로포폴을 더 많이 주겠다"는 취지로 제안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가 약 2000명에 이르는 외국인 명단을 사들여 이를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투약한 정황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투약 대상은 주로 유흥업 종사자와 사업가 등으로, A씨는 업계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불법 투약 영업을 이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프로포폴은 수술이나 검사 과정에서 마취와 진정 목적으로 사용하는 의료용 마약류다. 병·의원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투약 내역을 입력해야 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통해 오남용 여부를 관리한다. 그러나 검찰은 A씨가 타인 명의를 반복적으로 활용해 특정 환자에게 집중 투약하고, 시스템상 감시를 피해 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는 한 환자가 하루 10회 이상 프로포폴을 연속으로 투약받은 사례도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32명 가운데 6명이 반복 투약 이후 우울증이 심화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다만 사망과 투약 사이의 법적 인과관계는 향후 재판 과정에서 다뤄질 수 있는 쟁점이다.
A씨가 직접 투약하지 않고 자격이 없는 피부관리사에게 프로포폴을 반복 투약하도록 한 정황도 적발됐다. 검찰은 해당 의원 직원 6명과 프로포폴 중독자 5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사회 복귀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투약자 21명에 대해서는 치료·재활 연계를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검찰은 A씨가 범행으로 수십억 원대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고 범죄수익 환수 절차도 진행하고 있다. A씨는 범행 수익으로 고가 명품을 다수 구입하고 외제차를 운행하는 등 호화 생활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은 A씨가 취득한 범죄수익을 철저히 추징하고,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은 의료기관 내부에서 이뤄지는 마약류 오남용 관리의 허점을 드러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이 존재하더라도 타인 명의 도용과 허위 입력이 결합하면 감시망을 우회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검찰 수사는 불법 투약을 한 의사 개인의 책임을 넘어 병원 직원의 관여, 중독자 관리, 명의 도용 방지 체계까지 함께 점검해야 하는 문제를 남겼다.